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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

왜 한국인들도 고다이라 나오에 환호하는가?

by 스포토리 2018. 2.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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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화 선수를 누르고 500m 스피드 스케이팅에서 올림픽 신기록을 세우고 금메달을 딴 고다이라 나오에 대한 관심이 점점 뜨거워지고 있다. 일본 현지에서는 당연하게도 여자 스피드 스케이팅 사상 첫 금메달 리스트에 대해 환호하고 열광하는 것은 자연스럽다. 그런데 국내에서도 고다이라 나오에 열광하는 것은 분명 이유가 있을 것이다. 


늦깎이 고다이라 나오의 열정과 이상화와의 우정, 모든 것이 완벽했다



일본 선수. 그것도 한일간 경쟁을 펼친 일본 선수에 대해 한국인이 이렇게 우호적인 반응을 보인 것은 거의 볼 수 없었던 일이다. 대한민국 스포츠에서 일본과의 대결은 무조건 이겨야 한다. 져서는 안 된다. 우승을 하고 금메달을 따도 일본에게 지면 그건 비난의 대상이 되는 것이 현실이니 말이다. 


역사적 관계 속에서 한일 대결은 언제나 큰 화제가 될 수밖에 없었다. 일본의 경우 지배를 했던 입장이라는 점에서 우리와 조금 다른 시각이지만, 대한민국 입장에서는 피지배국이었던 과거 속에서 현재까지도 제대로 된 과거사에 대한 반성이 없는 일본에 분노할 수밖에 없는 일이니 말이다. 


스포츠는 국가 간의 경쟁이자 개인의 치열한 대결이다. 하지만 결국 국가간 대리전이라는 점에서 거대한 스포츠 축제는 또 다른 형태의 전쟁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각국은 사활을 걸고 메달을 따기 위해 노력 중이다. 그런 대결 속에서 승자와 패자는 엄연하게 갈릴 수밖에 없다. 그리고 평가 역시 냉정할 수밖에 없다. 


이상화는 청소년 선수 시절부터 각광을 받은 스타 선수였다. 만 17세이던 시절 2006년 토리노 동계 올림픽부터 출전한 이상화는 2010년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 기적을 만들어냈다. 서양 선수들이 지배하던 스피드 스케이팅에서 금메달을 딴 아시아 선수는 그렇게 전설을 만들기 시작했다. 


아시아 선수는 결코 할 수 없을 것이라 생각되었던 스피드 스케이팅 금메달은 고다이라 나오에게도 신선한 충격이었다고 한다. 당시 500m에서 12위에 입상했던 나오는 이상화를 보면서 꿈을 키웠으니 말이다. 단체전에서 은메달을 딴 것이 고다이라 나오가 얻은 최고의 성적이었다. 


2014년 소치 동계올림픽에서도 이상화는 500m 연속 금메달이라는 금자탑을 쌓았지만, 고다이라 나오는 5위에 입상한 것이 최고의 성적이었다. 20대 후반의 나이로 더는 기회가 없을 수도 있다는 위기감 속에서 고다이라 나오에게는 지원하는 업체도 모두 사라졌다고 한다. 


고교 졸업 후 기업이 아닌 대학을 선택했던 고다이라 나오는 그렇게 학업과 운동을 병행했다. 그러면서도 일본에서는 최고의 선수였던 고다이라는 올림픽에서 개인 메달을 따는 것에는 한계가 있었다. 기업의 후원마저 끊긴 상황에서 운동을 지속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이때 고다이라에게 지원을 한 것은 그녀가 재활을 하러 다니던 아이자와 병원이었다. 그녀를 직원으로 채용하고 훈련을 지원했다. 장기 출장의 형태로 그녀가 꾸준하게 운동할 수 있도록 도왔다. 나가노 출신 선수가 운동을 하고 싶은데 돕는 것은 당연하다는 간단한 논리로 고다이라 나오를 년 천만 엔 이상을 지원한 아이자와 병원장이 있어 그녀의 성공은 가능할 수 있었다. 


소치 올림픽 후 네덜란드 유학 역시 아이자와 병원의 후원이 있어 가능했다고 한다. 자국 내에서는 능력 있는 선수이지만 세계적인 선수로 성장하지 못한 무명 고다이라 나오는 그렇게 뒤늦은 나이에 네덜란드 유학길을 떠났다. 낡은 아파트에서 창밖으로 보이는 조랑말이 유일한 친구였다는 고다이라는 그렇게 네덜란드에서 '성난 호랑이' 주법을 익혔다. 


2년 동안 네덜란드 유학은 무명에 가까웠던 고다이라 나오를 세계적인 선수로 만들었다. 2016-2017 시즌부터 고다이라 나오는 이상화가 부상으로 주춤했던 스피드 스케이팅의 새로운 강자로 자리 잡았다. 500m 무패의 선수가 되었고, 기록 역시 언제나 최고였다. 


무명이던 고다이라 나오는 1000m 세계신기록까지 작성했다. 그리고 일본팀의 주장으로 평창을 찾은 그녀는 비록 1000m에서 은메달에 그쳤지만, 500m에서 올림픽 신기록을 작성하며 일본 역사상 여자 스피드 스케이팅 첫 금메달의 주인공이 되었다. 그녀의 나이 32살에 얻은 결과였다. 


은퇴를 생각할 나이에 세계 최고 선수가 된 고다이라 나오의 최고 장점은 체력이라고 한다. 엄청난 훈련으로 만들어진 그 체력이 결국 경쟁력이 되었다는 것이다. 선수들은 언제나 부상을 달고 산다. 그리고 재활을 반복하는 그들의 세계에서 30대를 넘긴 선수는 노장이다. 


한 번도 주목받지 못했던 고다이라 나오는 30대가 되어 세계 최고 선수가 되었다. 이는 그저 우연하게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평생 무명의 삶을 살면서도 항상 자신의 목표를 향해 노력해온 선수만이 가질 수 있는 선물과 같은 결과이기 때문이다. 


그녀가 더 돋보이는 것은 인성이다. 어려운 시절을 누구보다 더 경험해 봤던 그녀에게 금메달과 같은 값진 성과가 얼마나 소중한지 누구보다 잘 안다. 그리고 패자의 아픔 또한 누구보다 잘 아는 그녀는 마음으로 상대 선수를 품었다. 언젠가 부진한 실력으로 홀로 울고 있던 자신에게 찾아와 우승했던 이상화가 함께 울어줬다고 한다. 



어린 시절부터 국제대회를 함께 뛰며 친해진 이들의 우정은 그렇게 단단해져 갔다. 이상화는 등장과 함께 스타였지만, 고다이라 나오는 한 번도 개인전 우승을 차지해본 적 없었다. 나이는 3살 어리지만 세계적인 선수인 이상화를 보면서 자극을 받고 목표도 세웠던 그는 전설이었던 이상화를 이긴 후에도 우월해 하지 않았다. 우월감 대신 울던 이상화에게 두 팔을 벌려 안아주며 여전히 존경하고 있다고 말한 고다이라 나오에게 열광하는 것은 너무 자연스럽다. 


한일전 결과에서 한국의 패배. 그렇게 승자가 된 일본인에게 한국인이 이렇게 관심을 가지는 것 역시 이례적이다. 시대가 변한 탓도 있겠지만, 고다이라 나오가 보인 성숙한 태도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이상화 선수가 경기에 방해 받지 않도록 올림픽 신기록을 세운 후에도 손가락으로 입술을 가려 환호를 멈춰 달라고 부탁하는 선수의 품격은 그냥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치열한 경쟁의 장인 경기장에서 이런 품격을 만들어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더욱 12년 동안 단 한 번도 개인 수상을 하지 못한 선수가 생애 첫 올림픽 금메달을 땄다. 그 순간 오만 가지 생각이 스쳐 지나갔을 것이다. 마음껏 포효하고 즐거워해도 좋을 그 순간 고다이라 나오는 특별한 우정을 쌓아왔던 영원한 우상이자 라이벌이 된 이상화를 위해 모든 것은 참았다. 


금메달이 확정된 후에도 국기 세레머니를 하다 멈춰 선 채 눈물을 흘리던 이상화를 안고 위로의 말을 건네는 이들의 모습은 왜 우리가 스포츠에 열광했는지 다시 알게 해준다. 결과가 중요한 스포츠 경기에서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과정이다. 그 과정을 통해 많은 이들은 열광한다. 이상화와 고다이라 나오의 우정에 대해 많은 이들이 관심을 가지는 이유는 바로 이런 과정이 만들어준 감동 때문이기도 하다. 


나이에 얽매이지 않았다. 기업 후원도 사라진 최악의 상황에서도 진정한 열정은 가진 고다이라 나오는 병원의 지원을 받으며 스피드 스케이트 역사를 바꿔 놓고 있다. 그럼에도 항상 겸손함을 잃지 않는 고다이라 나오는 충분히 환호 받을 자격을 갖췄다. 스포츠 스타의 품격은 자신에게 냉정하고 경쟁자에게 관대한 그 마음에서 나올 것이다. 


승부는 냉정하지만 경기가 끝난 후 보이는 태도 하나하나가 그의 인격을 그대로 품어내고 있기 때문이다. 인터뷰에서도 그녀가 보인 빙상 위에서 행동도 모두 스포츠 스타로 사랑 받을 수밖에 없는 모든 것을 갖췄다. 비록 일본 금메달 리스트이지만 국내에서 이렇게 뜨거운 반응을 받는 것은 다 그만한 이유가 있다.


일본이 경험했던 절망의 시기를 우린 지금 관통 중이다. 지독한 절망이 지배하는 현실 속에서 고다이라 나오의 삶은 하나의 투쟁기와 같다. 그런 점에서 더욱 특별하게 다가왔을지도 모를 일이다. 온갖 어려움 속에서도 진정성 하나로 버티며 노력한 자의 승리. 그 승리에 모두가 열광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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