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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

김연아 그랜드슬램과 올포디움 피겨 100년 역사를 새롭게 쓴 그녀가 진정 특별한 이유

by 스포토리 2014. 2.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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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겨 100년 역사상 유일한 대기록을 가진 선수가 대한민국의 김연아입니다. 올포디움이라 명명된 그 기록은 출전하는 대회 중 단 한 번도 3위 이하로 내려간 적이 없음을 의미합니다. 17년의 피겨 생활 중 수많은 경기에 출전한 그녀가 이런 엄청난 기록을 세웠다는 것만으로도 위대할 수밖에 없습니다.

 

피겨 역사를 새롭게 쓴 그랜드슬램과 올포디움

 

 

 

 

17년간 피겨를 해왔던 김연아는 소치 올림픽을 마지막으로 선수 생활을 마감했습니다. 그녀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최선을 다했고, 그 노력의 대가는 생각보다는 아쉬웠습니다. 그녀는 메달에 연연하지 않는 의연함을 보였지만 그녀를 아끼는 수많은 이들은 여왕의 마지막이 이렇게 끝나기를 원하지 않았습니다.

 

 

올림픽 출전 자체를 심사숙고했던 그녀는 1년의 공백을 마치고 2013년 다시 빙판 위에 섰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세계선수권대회에서 화려하게 비상하며 올림픽 출전권 3장을 따냈습니다. 김연아가 올림픽에 출전하려 결심한 이유는 그것이 전부였습니다. 어린 후배들이 올림픽이라는 큰 무대에서 설 수 있도록 돕겠다는 의지가 그녀를 다시는 돌아보기도 싫다는 빙판 위에 서게 했습니다.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는 것보다 어린 후배들과 함께 올림픽 무대에 나서는 것만이 최우선이었던 여왕은 자신의 마지막 무대를 화려하게 장식했습니다. 쇼트와 프리 모두 올 클린으로 경기를 마친 그녀는 진정한 승자였습니다. 왜 수많은 피겨 팬들이 김연아가 진정한 승자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국내 언론이 그저 김연아를 이용한 장난에 그치는 것과 달리, 외신들이 더욱 적극적으로 김연아를 위해 분노하는 모습은 의외로 다가올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외신들이 그렇게 김연아의 은메달에 분노하는 것은 그만큼 그녀의 마지막 무대가 피겨 역사를 새롭게 쓸 수 있는 최고의 무대였기 때문일 것입니다.

 

자신의 마지막 무대를 마치고 17년 동안의 힘겨운 시간들이 이어지고, 눈물을 흘리고 싶었던 여왕은 눈물도 제대로 흘릴 수 없었습니다. 이미 자신의 감정마저 외부에 의해서 통제당할 수밖에 없었던 여왕은 슬픈 존재였습니다.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순수한 눈물마저 메달을 따지 못한 것에 대한 분노로 뒤바뀔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그녀는 애써 눈물을 참아야 했습니다.

 

 

김연아는 자신이 흘리는 눈물은 금메달을 땄어도 같은 눈물이었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 이유는 그 눈물에는 메달 색깔에 대한 의미가 아니라, 오직 자신을 위한 눈물이었기 때문입니다. 6살에 처음 시작한 피겨를 24살이 되어 마친 그녀가 그 수많은 감정들을 눈물에 담아내는 것조차 마음대로 할 수 없을 정도로 그녀는 모든 것을 참아야만 했습니다.


올림픽, 세계선수권대회, 4대륙선수권대회, 그랑프리 파이널, 피겨 선수들이라면 이 중 한 곳에서라도 금메달을 따고 싶어 합니다. 하지만 이 대회에서 포디움(시상대)에도 올라서지 못하고 선수 생활을 마감하는 선수들이 대부분인 상황에서 이 모든 것을 이룬 이는 바로 김연아였습니다.

 

피겨 전문 경기장도 없어 일반인들이 타던 놀이동산의 빙상장에서 연습을 해야 했던 여왕. 그 여왕은 그렇게 가족의 힘으로 피겨 볼모지인 대한민국에서 세계 최고의 선수로 성장했습니다. 피겨 후진국에서 김연아와 같은 여왕은 나올 수 없었습니다. 피겨 후진국인 대한민국에서 김연아는 독보적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체육회도 빙상연맹도 그 누구도 적극적으로 그녀를 돕지 않은 상황에서 그녀는 홀로 세계 피겨 역사를 새롭게 작성한 위대한 선수가 되었습니다.

 

 

피겨 선수들이 평생 피겨를 하면서 단 한 번이라도 금메달을 따내고 싶은 그곳에서 그녀는 그랜드슬램이라는 위대한 업적을 세웠습니다. 그 누구도 해내지 못한 기적과 같은 그랜드슬램은 그래서 더욱 위대할 수밖에 없습니다. 피겨 볼모지에서 이룬 이 성과는 그녀가 얼마나 피나는 노력을 했는지 보여주는 결과물이라는 점에서 가슴이 저릴 정도입니다.   

김연아에게는 그랜드슬램에 이어 올포디움이라는 위대한 기록도 추가했습니다. 포디움이란 시상대를 뜻하는 용어입니다. 그 시상대는 피겨 선수라면 모두 올라서고 싶은 자리이기도 합니다. 그 포디움에 피겨를 하면서 평생 한 번도 올라서 보지 못하고 선수 생활을 끝내는 이들도 많은 상황에서 올포디움을 기록한 것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위대한 일입니다.

 

노비스, 주니어, 시니어를 통털어 그녀가 출전한 모든 대회에서 올포디움을 기록한 것은 피겨 역사상 최초이자 결코 깨질 수 없는 위대한 기록이 되고 말았습니다. 17년이라는 긴 세월동안 운동을 한 선수가 출전하는 경기마다 3위권 이내에 모두 들었다는 것은 사기에 가깝습니다.

 

운동선수는 컨디션이라는 것이 존재하고 기량 역시 편차가 있기 때문에 모든 시합을 다 잘 할 수는 없습니다. 그렇기에 피겨 100년 역사에서도 올포디움에 근접한 선수가 오직 김연아를 제외하고 한 명이 전부일 정도로 힘들기만 합니다. 1960년 동계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캐롤 헤이스가 최초로 올포디움을 기록했다고 알려졌었습니다. 하지만 1953년 세계 선수권에서 캐롤 헤이스가 4위를 한 기록이 발견되며 이 기록은 김연아가 단독이자 최초의 기록으로 남게 되었습니다.

 

 

긴 세월 동안 선수생활을 하면서 어떻게 단 한 번도 포디움에서 내려서지 않았는지 그게 이상할 정도인 김연아는 그렇게 노력해서 얻은 결과였습니다. 누구도 주목하지 않았던 피겨 선수. 6살에 시작한 김연아는 피겨 볼모지인 대한민국에서 화려하게 비상해 세계 최고의 전설이 되었습니다.

 

김연아가 위대한 이유는 그랜드슬램과 올포디움을 기록해서만은 아닙니다. 그런 기록을 세우기 위해 그녀가 얼마나 노력했는지가 더욱 강렬하게 다가오기 때문입니다. 피겨 볼모지이자 피겨 후진국인 대한민국에서 세계 피겨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수가 나왔다는 사실 자체가 기적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기적은 지독한 노력의 결과였다는 점에서 김연아의 기록은 특별하게 다가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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