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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구

현대건설 페퍼스에 3-2 승, 양효진 황연주 전승 이끌었다

by 스포토리 2021. 11.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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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시즌 꼴찌팀이었던 현대건설이 1라운드 전승으로 마무리했다. 완벽한 변신이라는 점에서 놀랍게 다가왔다. 지난 컵대회 우승 분위기를 시즌에도 그대로 가져오며 상대를 압도하는 경기력을 보이며 1라운드 전승이라는 놀라운 성취를 하게 되었다.

 

전승을 앞둔 팀과 첫승을 기다리는 팀의 대결은 흥미로웠다. 전력으로 보면 현대건설이 무조건 이겨야 하는 경기다. 선수 개개인의 능력차가 월등하다는 점에서 페퍼스에게 진다는 것 자체가 이해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배구는 그렇게 선수 이름으로 하는 것은 아니다.

지난 경기 부상으로 빠졌던 야스민이 선발 출전하며 엘리자벳과의 외국인 선수 맞대결도 흥미롭게 다가왔다. 워낙 쟁쟁한 선수들로 신구조화가 잘 이뤄진 현대건설이라는 점에서 페퍼스를 상대로 손쉽게 경기를 이길 것으로 봤다. 역시 경기는 해봐야 안다.

 

첫 세트부터 만만하지 않았다. 분명 현대건설이 전승을 하고 있고, 뛰어난 선수들이 많다는 점에서 전력상 우위를 점하는 것은 당연해 보였지만, 젊은 선수들이 대거 포진한 신생팀 페퍼스는 그 패기로 상대하며 25-21 승부를 했다.

 

20점대까지 함께 올라간다는 것은 결과가 어느 팀으로 나든 이상하지 않다는 의미다. 일방적 경기가 아니라 경쟁을 하는 승부를 펼쳤다는 점은 그래서 중요하다. 그리고 대반전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올 시즌 절대 강자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현대건설이 혼쭐이 나기 시작했다.

 

2세트 역시 1세트와 비슷한 흐름이었다. 하지만 세트를 잡은 것은 페퍼스였다. 23-25라는 점수가 이야기하듯 마지막 순간까지도 피말리는 접전의 연속이었다. 흥국생명과 대결에서 너무 많은 범실로 자멸한 것과 달리, 오늘 경기에서는 범실을 최대한 줄였다.

 

범실이 줄고 리시브가 잘되니 그 어느 팀과 맞붙어도 쉽게 지는 경기를 하지 않는다. 일단 수비만 잘 되면 공격 가능성이 늘어나고, 이는 상대를 압박해 승기를 잡을 수 있는 경우의 수가 많아진다는 의미가 된다. 페퍼스가 힘든 지점은 20점 이후다.

 

20점까지 악착같이 따라붙어도, 결국 노련함이 부족한 팀은 좋은 결과를 내기 어려웠다. 지난 경기들을 봐도 페퍼스는 결정적 순간 범실이 늘어나며 세트를 내주는 경우들이 많았다. 엘리자벳 역시 어리다는 점에서 중요한 시점 서브나 공격에서 범실을 하며 경기를 내주는 이유가 되고는 했다.

 

현대건설과 2세트도 비슷한 양상이기는 했지만, 페퍼스는 23점 상황에서 상대를 잡았다. 이는 페퍼스가 그 중요한 고비를 넘기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경기를 이기기 위해서는 지독한 압박에서 벗어나야만 한다. 그걸 스스로 이겨내고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

 

1세트에서도 20점에 올라서며 불안한 모습을 보였지만 2세트에서는 박빙의 승부에서 세트를 잡았다. 이는 중요했다. 페퍼스가 잘 하자 현대건설이 당황하기 시작했고, 실책들이 많아지며 자멸할 수밖에 없었다. 2세트를 잡은 페퍼스의 기세는 대단했다.

 

3세트에서도 페퍼스는 기본 중의 기본인 수비 안정 이후 공격으로 현대건설을 25-19로 완파해버렸다. 점수차가 너무 크게 나자 페퍼스 선수들이 오히려 불안해하며 실책이 연달아 나와 19점까지 줬을 뿐이다. 만약 노련한 팀이었다면 3세트 분위기상 페퍼스가 25-11 정도로 이길 수 있는 상황이었다.

첫 세트를 내주고 페퍼스는 1위 팀인 현대건설에 2세트를 연달아 따냈다. 기적이 일어나고 있는 중이었다. 현대건설은 홈경기에서 시즌 첫 패를 신생팀의 첫승으로 내줄 수도 있는 상황이 되었다. 하지만 그 경험의 힘은 무서울 정도로 경기를 지배했다.

 

세트 스코어 2-1로 앞선 페퍼스는 이길 수 있다는 생각이 조금은 들떴고, 그런 분위기는 감독이 아무리 자제를 시켜도 쉽게 이겨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선수들 전부 주전이 아닌 웜웍존에서 경기를 지켜봤었다. 기회가 주어지면 서브나 원포인트 수비에 서는 것이 전부였던 선수들이었다.

 

그들이 이제 앞줄에 서서 경기를 한다. 그것만으로도 선수들에게는 감사한 일이고 배구에 대한 열정이 쏟아낼 수밖에 없는 상황들이다. 하지만 자신이 경험해 보지 못했던 그 상황들은 결국 선수들에게는 넘어서기 힘든 벽처럼 다가올 수밖에 없었다. 

 

패기 넘치는 공격을 하는 페퍼스를 상대로 현대건설은 정지윤을 4세트 선발로 내세워 힘으로 누르기 시작했다. 여기에 노련한 베테랑 선수들인 양효진과 황연주의 공격은 페퍼스가 감당하기는 어려웠다. 다양한 형태의 공격으로 노련함이 없는 페퍼스를 공략하는 현대건설은 역시 대단했다.

 

시즌 초반 폭풍처럼 여자배구를 휩쓸었던 야스민이 부상으로 주춤하는 사이 그 자리를 채운 왕년의 한국 여자배구 최고의 선수였던 황연주는 자신이 여전히 건재함을 증명해냈다. 전 경기에서도 압도적인 실력으로 무패 행진하던 인삼공사를 무기력하게 만들었다.

 

산전수전을 다 겪은 황연주는 페퍼스의 패기를 어떻게 무기력하게 만드는지 잘 알고 있었다. 상대가 수를 잃고 한 발 앞서 다양한 패턴의 공격을 하는 노력한 황연주를 페퍼스가 막기는 어렵다. 이 모든 것이 수많은 경기를 통해 습득된 경험이라는 점에서 페퍼스 선수들로서는 대응할 수가 없었다.

 

미들 브로커로서 수비만이 아니라 공격에서도 압도적인 양효진은 오늘도 대단했다. 블로킹만이 아니라 공격에서도 상대를 압도하며 강한 공격만이 답이 아님을 잘 보여주었다. 배구 센스가 절정에 달한 양효진은 23점으로 팀 최다 득점을 올렸다. 

 

여기에 황연주에 이어 두 번째로 공격득점 4500점을 넘기기도 했다. 양효진은 공격 점유율이 20.12%밖에 되지 않았지만 57.58%의 공격 성공률을 기록하며 위기의 현대건설을 구해냈다. 압도적인 실력을 보인 양효진이 없었다면 현대건설은 페퍼스에 무기력하게 당할 수밖에 없는 경기였다.

 

위기에 처한 상황에서 맞은 4세트에서 노련함으로 상대를 압도한 현대건설은 25-12로 승부를 5세트까지 이어갈 수 있었다. 비슷한 상황에서 페퍼스는 실책으로 상대가 추격할 수 있는 빌미를 제공한 것과 달리, 현대건설은 압도적으로 상대를 제어하며 다음 세트에 대한 승기까지 잡아내는 노련함을 보였다.

15점으로 승부를 내는 5세트는 올 시즌 여자배구에서 처음 나왔다. 리그 1위 팀과 꼴찌팀의 대결에서 이런 승부가 벌어졌다는 사실 자체가 흥미로울 수밖에 없었다. 경기 패턴은 유사하게 흘러갔다. 현대건설의 노련한 경기력과 페퍼스의 패기 넘치는 경기력의 대결은 결국 현대건설의 승리로 이어질 수밖에 없었다.

 

사실 페퍼스 역시 승리에 대한 기대감이 커졌다. 4세트 무기력하게 내줬지만, 5세트에서도 비등한 경리를 하며 어느 팀이든 범실이 잦으면 패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충분히 신생팀 첫승도 기대해볼 수 있을 정도의 상황이었으니 말이다.  

 

페퍼스는 마지막 기회에 서브 미스로 상대에게 점수를 내주며 첫승은 다음 경기로 미룰 수밖에 없게 되었다. 15-13이라는 점수가 보여주듯 마지막 순간까지 누가 승리를 할지 예측하기 어려울 정도로 대단한 승부를 펼쳤다.

 

결과론이지만 이한비의 마지막 서브가 범실만 되지 않았다면 승패는 알 수 없었다. 페퍼스는 엘리자벳이 31점을 올리며 팀의 핵심 역할을 잘해주었다. 공격 점유율이 50.00%에 달했지만, 공격 성공률은 36.23%에 그쳤다. 4세트 후반부터 엘리자벳의 공격에 집중했지만, 현대건설이라는 거함을 잡지는 못했다.

하혜진이 11 득점을 해주며 꾸준한 모습을 보이는 것은 중요하다. 아포짓 포지션이지만 미들 브로커 역할도 해줄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엘리자벳의 블로킹 6개에 이어 하혜진이 3개를 해주며 페퍼스에 중요한 역할을 해주고 있는 중이다. 

 

페퍼스는 비록 첫승에 실패했지만 점점 성장하고 있음을 알게 한다. 어쩔 수 없는 경험의 한계와 선수 개개인이 가진 실력차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그런 실력차마저 좁혀가는 이들의 배구에 대한 열정은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주고 있다.

 

현재 여자배구 감독 중 최고령인 김형실 감독은 가장 어린 팀을 지도하고 있다. 너무 큰 실력차를 인정하면서도 선수들이 열정을 가지고 경기를 할 수 있도록 독려하고 격려하는 모습이 보기 좋다. 선수들에게 웃으라며 배구 자체에 대한 열정을 키워내고 있는 김형실 감독은 최고라고 할 수 있다.

 

선수들을 다그치거나 비난하지 않고 그들이 해낼 수 있는 최고치가 무엇인지, 그리고 오히려 다독이며 이들이 보다 성장할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어주고 있는 김형실 감독의 이런 모습은 페퍼스의 성장에 절대적이라고 할 수 있다. 흥국생명을 거의 다 잡았던 페퍼스는 1위 현대건설마저 경악하게 했다. 

 

1라운드 마지막 경기가 기업은행이라는 점에서 페퍼스는 첫승을 기대해도 좋을 듯하다. 같은 5연패지만 점수득실률에 앞서며 페퍼스는 시즌 첫 6위에 올라섰다. 다른 팀의 국가대표들과 달리, 좀처럼 존재감을 보이지 못하고 외국인 선수 공격에 집중하는 기업은행의 자중지란은 결과적으로 페퍼스를 이기기 어렵게 만든다. 과연 페퍼스가 1라운드 마지막 경기에서 창단 첫승을 기록할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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