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행을 거듭하는 기업은행 논란으로 시끄러운 상황에서도 다른 팀들의 경기는 흥미롭게 이어지고 있다. 막장극을 달리는 구단과 감독 대행, 선수들의 행태만 제외하면 한국 여자배구는 흥미롭다. 오래된 친구 사이인 김종민-차상현 감독이 이끄는 도로공사와 칼텍스의 대결은 언제나 흥미로웠다.
두 팀 모두 최근 연승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 맞대결 승자가 누구냐는 중요했다. 3위인 칼텍스가 도로공사를 잡으면 2위 인삼공사와 치열한 대결을 할 수 있고, 4위인 도로공사가 승리하면 3위와 경쟁을 하게 되는 구조라는 점에서 두 팀의 경기는 흥미로웠다.
도로공사는 칼텍스와 경기에서 컵대회 포함 12연패 중이다. 한 팀에서 700일 넘게 단 한 번도 이기지 못했다는 것은 문제다. 2년 넘게 경기를 하며 특정팀에게 항상 졌다는 것은 트라우마가 생길 정도로 힘든 일이니 말이다. 오늘 경기 역시 이런 트라우마가 작용하며 경기 자체는 더욱 흥미로운 상황을 만들었다.
1세트는 도로공사가 지배했다. 블로킹과 리시브가 좋은 도로공사의 장점들이 1세트에는 잘 드러났다. 여기에 켈시의 높은 위치의 타격이 상대를 압박하며 순조로웠다. 이와 달리 칼텍스의 범실은 눈에 띄게 많았고, 이는 결국 승패를 결정짓는 이유가 되었다.
이윤정 세터는 지난 경기에 이어 두 경기 연속 선발로 나서게 되었다. 기존 세터인 이고은이 밀려나고 이윤정 세터가 들어오며 팀은 완승을 거뒀고, 그 흐름을 이어가기 위함이었다. 김종민 감독의 선택은 옳았다. 그리고 이고은 세터 역시 현재 상황에 불만을 토로하기보다 수용하고 스스로 문제점을 찾는데 집중한다는 점에서 문제의 팀과는 많이 달랐다.
수비력이 좋은 문정원 선수를 공격력이 좋은 전새얀보다 선발로 내세우는 전략 역시 성공적이었다. 전새얀의 높이와 공격이 도로공사에는 절실하지만, 리시브에서 불안을 보이는 전새얀과 달리, 문정원의 안정성이 현재로서는 도로공사에는 필요하다.
도로공사는 1세트를 25-17로 가볍게 제압했다. 이 과정에서 칼텍스는 범시를 7개나 하며 자멸했다. 이와 달리 도로공가는 2개의 범실로 완벽한 경기를 펼쳤다. 더욱 도로공사는 다섯 개의 블로킹이 성공하며 상대 공격을 무력화했다.
당연히 칼텍스의 새로운 공격 삼각편대인 모마-강소휘, 유서연 조합이 힘을 쓰지 못할 정도였다. 세 선수 모두 높은 신장을 이용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블로킹이 강한 팀과 경기에서 고전하고는 했다. 그런 점에서 1세트 승리 요인은 블로킹과 리시브의 승리이기도 했다.
2세트 역시 정대현의 블로킹이 터지며 모마의 공격력을 무력화하고 5-2까지 앞서나갔지만, 칼텍스는 권민지를 투입하며 분위기 반전에 성공했다. 높이와 공격이 모두 가능한 미들 브로커처럼 활약한 아웃사이드 히터인 권민지가 투입되며 박정아의 공격을 블로킹으로 막으며 5-4까지 추격을 하며 분위기 반전에 성공했다.
블로킹으로 승기를 잡았던 도로공사는 블로킹을 성공시킨 칼텍스는 모마와 유서연의 공격이 성공하며 역전에 성공했다. 윙 스트라이커들이 폭발하고 리시브가 성공하며 1세트와 전혀 다른 상황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칼텍스 공격 성공이 높아지자 도로공사는 당황해 범실이 늘었다.
1세트 5득점을 한 모마는 2세트에서 8 득점을 하며 완연하게 살아나는 모습을 보였다. 이보다 1세트 완벽하게 막혔던 유서연이 1세트 1 득점에 그쳤지만, 2세트 6점을 올리며 분위기 반전에 성공했다. 여기에 리시브 효율 역시 45%까지 올리며 칼텍스는 1세트와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25-23으로 승리를 따냈다.
세트 스코어 1:1 상황에서 3세트 역시 칼텍스가 압도해갔다. 1세트 완벽한 경기를 만들었던 도고공사는 2세트 좀처럼 힘을 쓰지 못하고 밀리더니, 3세트 역시 답을 찾지 못했다. 점수는 비슷하게 이어지는 듯했지만, 공격 흐름이 매끄럽지 못하며 상대를 압도한다는 느낌을 받을 수 없었다.
3세트에서 켈시는 단 1득점에 그쳤다. 주포가 1점에 그친 상황에서 상대를 압도할 수는 없다. 켈시가 1세트 완벽한 공격을 펼친 것과 달리, 3세트부터 힘에 부친 듯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밀리던 도로공사가 3세트를 잡을 수 있는 기회도 있었다.
정대영의 블로킹이 살아나며 21-23까지 추격에 성공했다. 3 연속 득점을 하며 기세를 올리던 상황에서 결정적으로 켈시의 중앙 백어택이 범실로 끝나며 21-24로 점수차가 벌어진 것은 아쉬웠다. 완벽한 기회에서 켈시의 공격이 성공했다면 22-23으로 한 점 차 승부가 될 수도 있었다.
켈시의 공격 범실에 이어 문정원의 서브 범실까지 이어지며 도로공사는 3세트를 허무하게 내줘야 했다. 4세트는 도로공사의 반격이었다. 어차피 4세트를 내주면 지는 경기다. 그런 점에서 도로공사는 4세트를 내줄 수 없는 것은 당연했다.
3세트 극심한 부진에 빠진 켈시가 조금씩 살아난 것이 답이었다. 여기에 정대영과 전새얀의 블로킹 등이 나오며 승부를 팽팽하게 이어갈 수 있었다. 정대영이 모마를 막아 14-12 역전을 하면, 유서연의 영특한 연타 공격으로 14-15로 역전에 성공하는 등 경기 자체는 흥미롭게 이어졌다.
하지만 켈시가 살아나며 박빙의 승부는 도로공사의 25-22로 승리하며 5세트까지 몰아갔다. 컵대회 포함 12연패 중인 도로공사로서는 무조건 잡아야 하는 세트였다. 칼텍스 역시 연승을 이어가며 2위로 치고 올라가기 위해서는 내줄 수 없는 세트였다.
5세트 초반은 강소휘의 맹활약으로 압도했다. 손쉽게 경기를 내주는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가 들 정도였다. 하지만 반격은 시작되었고 동점 상황까지 만든 11-11 상황에서 배유나의 서브 범실은 아쉬웠다. 15점 승부에서 10점 이후 나오는 실책은 곧 패배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부담이니 말이다.
선수들 역시 이를 너무 잘 알기 때문에 최대한 범실을 내지 않기 위해 신경쓰며 서브를 넣다 보니 오히려 범실이 많아지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벌어졌다. 이 상황에서 다시 정대영의 블로킹이 불을 뿜었다. 정대영은 모마의 공격을 좌우에서 연속으로 블로킹으로 막으며 도로공사가 13-11까지 앞서 나가게 만들었다.
이 상황에서 강소휘의 공격이 성공하고, 권민지가 켈시의 공격을 블로킹으로 막아내며 13-14로 오히려 역전에 성공하는 상황을 만들기도 했다.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전새얀의 공격이 라인에 살짝 묻으며 성공한 것은 결정적이었다. 만약 이게 아웃이 되었다면 도로공사는 질 수도 있는 경기였기 때문이다.
절묘하게 라인에 묻어 성공하더니, 전새얀은 모마의 공격을 블로킹으로 막으며 긴 경기에 종지부를 찍었다. 도로공사는 칼텍스는 5세트에서 16-14로 잡으며 길고 길었던 리그 10연패를 끊었다. 선수 모두가 하나가 되어 만든 감격적인 승리였다.
오늘 경기에서도 이윤정 세터는 잘 해냈다. 물론 중간 중간 아쉬운 부분들도 많이 보였다. 2단으로 직접 공격하며 반복해 막히는 장면 등에서는 여전히 노련함이 떨어진 모습이었다. 여기에 수비를 하다 손목을 다쳐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에 모두가 놀랄 수밖에 없었다.
테이핑을 하고 나서 감각이 무뎌지며 높은 공 토스가 마음대로 되지 않아 도로공사 공격에 아쉬움이 생긴 것도 문제였다. 켈시와 모마의 외국인 선수 대결에서 켈시가 31-28 득점으로 앞섰다. 분명 켈시가 체력적인 부담을 느끼며 무너지는 상황들이 반복적으로 등장하고 있다.
이윤정의 맹활약은 선수 부족을 언급하며 상왕이 된 몇몇 선수들 문제를 당연한 듯 이야기하는 상황에 아니라고 외치고 있다는 점에서 반갑게 다가온다. 모두가 그럴 수는 없겠지만 실업팀에도 좋은 선수들은 존재하고, 이를 어떻게 활용하느냐가 중요함을 이윤정은 잘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 그 활약이 반갑다.
힘에 부치는 상황에서 대신할 선수가 아직 명확하지 않다는 것은 도로공사의 문제다. 박정아가 주포 역할을 해줘야 하지만 그렇지 못하다. 전새얀이 5세트 팀 승리를 이끄는 좋은 경기를 보여줬지만, 여전히 리시브 불안을 떨구지 못한 아쉬움이 있다.
박정아의 11득점은 교체로 경기에 나선 전새얀과 미들 브로커인 정대영과 같은 득점이다. 이건 문제가 크다는 의미다. 박정아 정도 되면 5세트 접전 상황이라면 최소 20점대 중반 이상의 득점을 올려줘야 팀이 정상적인 운영이 가능하다. 그게 안 되니 도로공사가 힘겨울 수밖에 없다.
이와 달리, 칼텍스는 안정적인 공격력을 보였다. 모마의 28득점에 이어 강소휘가 21 득점, 유서연 16 득점, 권민지 12 득점을 올리며 도로공사보다 더욱 뛰어난 공격력을 선보였다. 칼텍스는 오늘 경기에서 지기는 했지만, 권민지의 역할을 다시 확인했다는 점에서 큰 수확이다.
아웃사이드 히터 자리이지만 중앙에서 미들 브로커 역할도 잘해주고 있다는 점에서 칼텍스로서는 중요한 자원이다. 1라운드 선수라는 점에서 이미 실력은 인정받고 프로에 입문한 선수다. 그리고 언제나 활기찬 모습으로 팀 분위기를 이끌기도 한다는 점에서 권민지가 보다 자주 출전하면 실력 향상은 급격하게 이뤄질 것이다.
국가대표 세터였던 안혜진의 부진이 이어지고 있는 것은 아쉽다. 약점들이 올 시즌 더욱 도드라져 나오며, 김지원이 자주 세터 자리에 나오는 것은 문제다. 물론 기본 실력이 있기에 빠르게 자리를 찾아가겠지만 의외로 길어지는 상황은 아쉽다.
도로공사는 칼텍스와 풀세트 접전 끝에 컵대회 포함한 12연패의 늪에서 벗어났다. 여기에 연승에 성공하며 3위 자리를 두고 치열한 대결을 할 수 있게 되었다. 1강 3중, 3약 구도가 본격적으로 이어지게 되었다는 점에서 경기에 대한 흥미도는 더욱 높아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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