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식인귀, 아무도 그만큼 이기지 못했다
| 생년월일1945년 6월 17일 | 출신벨기에 메이세 (브뤼셀 인근) |
| 프로 활동1965 – 1978 | 통산 우승525승 |
| 그랑투르투르 5회 · 지로 5회 · 부엘타 1회 | 기념비 레이스19회 (5개 전부 제패) |
| 세계 선수권로드 레이스 3회 (1967·1971·1974) | 아워 레코드49.431km (1972, 멕시코시티) |
프롤로그 — 1969년 투르 드 프랑스, 첫 번째 황금빛 여름
1969년 7월, 투르 드 프랑스 17스테이지. 피레네 산맥의 투르말레 고개였습니다.

에디 머크스는 그날 혼자 달렸습니다. 집단 선두 그룹에서 130킬로미터 이상을 남기고 혼자 치고 나갔습니다. 산을 넘고, 내려오고, 다시 올라갔습니다. 그것은 전략이 아니었습니다. 적어도 전통적인 의미의 전략은 아니었습니다. 피레네를 130킬로미터 혼자 달리는 것은 계산으로 나오는 결정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8분 차이로 스테이지를 이겼습니다. 2위가 8분 뒤에 들어왔습니다.
그해 머크스는 투르 드 프랑스에서 스테이지 6개를 이겼습니다. 종합 우승. 산악상. 포인트상. 투르가 시작된 이래 한 선수가 옐로 저지·폴카닷 저지·그린 저지를 동시에 거머쥔 것은 그것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습니다.
그의 나이 스물네 살이었습니다.
1장 — 브뤼셀 소년, 자전거를 만나다
에드워드 루이 조제프 머크스는 1945년 6월 17일, 벨기에 브뤼셀 인근 메이세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 쥘 머크스는 식료품점을 운영했습니다. 유복하지는 않았지만 안정된 가정이었습니다.
그가 처음 자전거를 탄 것은 여섯 살이었습니다. 특별한 계기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벨기에 아이들에게 자전거는 일상이었고, 머크스에게도 처음엔 그랬습니다. 달라진 것은 속도를 느끼면서부터였습니다. 그는 빨리 달리는 것이 좋았고, 빨리 달릴수록 더 빨리 달리고 싶었다고 나중에 회고했습니다.
열여섯 살에 처음 아마추어 레이스에 출전했습니다. 당시 그를 눈여겨본 것은 전 세계 챔피언 출신 코치 기 뷔세였습니다. 뷔세는 어린 머크스의 페달링을 보고 즉시 훈련을 지도하겠다고 나섰습니다.
1964년, 열아홉 살의 머크스는 도쿄 올림픽 벨기에 대표로 출전했습니다. 로드 레이스에서 상위권에 들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 직후 아마추어 세계 선수권대회에서 우승했습니다. 프로 전환을 결정한 것은 그해 말이었습니다.
2장 — 클래식의 제왕, 아마추어에서 프로로
1965년 프로 데뷔. 솔렉스-사벤에서 시작해 이듬해 픽스-클럽랜으로 이적했습니다. 그리고 1966년, 스물한 살의 머크스는 밀라노-산레모에서 우승했습니다.
밀라노-산레모. 이탈리아 북부 밀라노에서 출발해 리구리아 해안을 따라 산레모까지 약 300킬로미터를 달리는 클래식 레이스입니다. 사이클링에서 '기념비(Monuments)'로 불리는 다섯 개의 최고 권위 레이스 중 하나입니다. 스물한 살의 프로 2년 차 선수가 이 레이스를 이기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었습니다.
그는 이 레이스를 통산 7번 이겼습니다.

플랑드르 투르 2회, 파리-루베 3회, 리에주-바스토뉴-리에주 5회, 롬바르디아 투르 2회. 다섯 개의 기념비 레이스 모두에서 적어도 한 번 이상 우승한 선수는 사이클링 역사에서 머크스가 유일합니다. 이 업적을 가리켜 사이클링 팬들은 '기념비의 사이클'이라고 부릅니다.
클래식 레이스는 그랑투르와 다릅니다. 하루에 끝납니다. 날씨, 노면, 지형이 예측 불가능합니다. 전술과 체력이 동시에 요구됩니다. 머크스는 이 두 가지 장르 모두에서 역대 최고 수준의 기록을 남긴 유일한 선수입니다.
3장 — 식인귀의 탄생, 캐니발이라는 이름
'캐니발(The Cannibal)' — 식인귀. 이 별명을 처음 붙인 것은 머크스의 팀 동료 크리스티앙 레몽의 딸이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아이가 "저 아저씨는 다 먹어버려"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별명이 된 이유는 명확했습니다. 머크스는 이길 수 있는 레이스는 전부 이기려 했습니다. 이미 종합 우승이 확정된 상황에서도 스테이지 우승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팀 동료에게 우승을 양보하는 법이 거의 없었습니다. 상대가 지쳐 있어도 공격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이 태도는 동료들에게도 불편한 것이었습니다. 같은 팀 선수들이 스테이지 우승을 노릴 기회가 거의 없었기 때문입니다. 일부 팀원들은 머크스와 함께 뛰는 것이 영광이지만 동시에 고역이라고 토로했습니다.

상대 팀에게는 말할 것도 없었습니다. 머크스가 출전한다는 것은 우승 경쟁에서 이미 한 명을 제외하고 시작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러나 머크스 본인은 이 태도를 의도적인 지배욕으로 설명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단지 이기고 싶었다고 했습니다. 이기는 것이 좋았다고 했습니다. 이길 수 있는 상황에서 이기지 않는다는 것이 그에게는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4장 — 투르 드 프랑스 5회, 지배의 역사
머크스는 투르 드 프랑스에 7번 출전해 5번 우승했습니다. 1969, 1970, 1971, 1972, 1974년. 1973년은 지로 디탈리아와 부엘타 에스파냐에 집중하기 위해 투르를 건너뛰었습니다. 1975년은 레이스 도중 관중의 폭행으로 부상을 입은 데다 베르나르 테베네에게 압박을 받아 2위에 그쳤습니다.
5회 우승은 현재까지 자크 앙크틸, 베르나르 이노, 미겔 인두라인, 랜스 암스트롱과 함께 공동 최다 기록입니다. 그러나 다른 5회 우승자들과 머크스를 가르는 것이 있습니다 — 스테이지 우승 수입니다.
머크스는 투르 드 프랑스에서만 34개의 스테이지를 이겼습니다. 더 중요한 것은 그 스테이지들의 성격입니다 — 평지 스프린트, 산악 스테이지, 개인 타임트라이얼. 머크스는 어느 하나에 특화된 선수가 아니었습니다. 모든 지형에서 이겼습니다.

1971년에는 레이스 도중 낙차 사고로 갈비뼈를 다쳤음에도 우승했습니다. 1972년에는 개인 타임트라이얼에서 2위와 3분 이상 차이로 이겼습니다. 이 숫자가 현재 기준으로 얼마나 비현실적인지는, 오늘날 투르에서 1분 차이만 나도 압도적 우승으로 기록된다는 사실로 가늠할 수 있습니다.
5장 — 지로 디탈리아와 부엘타, 세 개의 그랑투르
사이클링의 그랑투르는 세 개입니다. 투르 드 프랑스, 지로 디탈리아, 부엘타 에스파냐. 세 레이스 모두 3주에 걸쳐 진행되는 스테이지 레이스입니다. 세 개 모두를 이긴 선수는 역사적으로 손에 꼽힙니다.
머크스는 세 개를 모두 이겼습니다. 투르 드 프랑스 5회, 지로 디탈리아 5회, 부엘타 에스파냐 1회. 합산 11회.
지로 디탈리아에서의 머크스는 투르에서만큼이나 지배적이었습니다. 1968년 첫 지로 우승부터 시작해 1970, 1972, 1973, 1974년 우승을 추가했습니다. 이탈리아 팬들은 외국 선수가 자국 레이스를 이렇게 지배하는 것을 달갑게 여기지 않았지만, 머크스의 레이싱 앞에서는 침묵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1973년은 머크스의 커리어에서 투르를 건너뛴 유일한 해였지만, 그해 그는 지로와 부엘타를 모두 이겼습니다. 그랑투르 두 개와 함께 밀라노-산레모, 리에주-바스토뉴-리에주, 세계 선수권대회 로드 레이스까지 석권했습니다. 한 시즌에 이 정도 성과를 낸 선수는 전후로 존재하지 않습니다.
6장 — 1972년, 한 시간의 기록
1972년 10월 25일, 멕시코시티 아구스틴 멜가르 벨로드롬.
에디 머크스는 혼자 자전거에 올랐습니다. 상대도 없고, 팀도 없었습니다. 목표는 단 하나 — 한 시간 동안 얼마나 멀리 달릴 수 있는가.

사이클링의 '아워 레코드(Hour Record)'는 종목에서 가장 순수한 형태의 도전입니다. 벨로드롬 트랙을 정확히 한 시간 동안 혼자 달려 최장 거리를 기록하는 것. 기어 변속도, 팀의 도움도, 바람막이도 없습니다. 선수와 자전거와 시간만 있습니다.
그날 머크스는 49.431킬로미터를 달렸습니다. 당시 세계 기록을 3킬로미터 이상 경신했습니다.
"내 인생에서 가장 힘든 한 시간이었습니다. 다시는 하지 않겠습니다."
이 기록은 1984년까지 12년간 깨지지 않았습니다. 이후 장비와 훈련 과학의 발전으로 기록은 경신됐지만, UCI(국제사이클연맹)는 한때 장비 규정을 머크스 당시 기준으로 제한하며 클래식 기록을 별도로 관리했습니다. 그 클래식 기록의 기준점이 머크스의 49.431킬로미터였습니다.
7장 — 도핑 논란과 폰테니야, 지워지지 않는 오점
머크스의 커리어에는 지워지지 않는 두 개의 사건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1969년 지로 디탈리아 도핑 검사 양성 반응입니다. 당시 머크스는 지로를 선두로 달리고 있었고 우승이 유력한 상황이었습니다. 페나 드 파리아 스테이지 직후 검사에서 암페타민 계열 성분이 검출됐습니다. 머크스는 즉시 실격 처리됐고 레이스에서 배제됐습니다.
머크스는 끝까지 고의적인 복용을 부인했습니다. 누군가 음료에 물질을 넣었다는 주장이었습니다. 당시 이탈리아 사이클링계의 복잡한 이해관계를 고려할 때 이 주장을 단순히 변명으로 보기 어렵다는 시각도 있습니다. 그러나 진실은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그해 투르 드 프랑스에서 머크스는 앞서 이야기한 압도적인 우승을 거뒀습니다.
두 번째는 1975년 투르 드 프랑스 피 드 돔 스테이지에서의 사건입니다. 마지막 클라이밍 구간에서 관중 한 명이 달리는 머크스의 복부를 주먹으로 가격했습니다. 머크스는 고통을 참으며 완주했지만 이후 상태가 급격히 나빠졌습니다. 결국 그해 투르는 베르나르 테베네에게 종합 우승을 내줬습니다. 머크스는 그 부상이 이후 경기력에 장기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말했습니다.
이 두 사건은 머크스의 커리어를 완전히 설명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빼놓을 수도 없습니다.
8장 — 은퇴, 그리고 남겨진 숫자들
머크스는 1978년 공식 은퇴했습니다. 마지막 몇 시즌은 전성기의 그것이 아니었습니다. 1975년 관중 폭행 이후 이어진 크고 작은 부상들이 몸을 갉아먹었습니다. 그는 은퇴할 때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몸으로 머크스답게 달릴 수 없습니다."

은퇴 후 그는 자신의 이름을 딴 자전거 브랜드 에디 머크스 사이클스를 설립했습니다. 현재까지 운영되고 있으며, 벨기에 수제 자전거의 대명사로 꼽힙니다. 아들 악셀 머크스도 프로 사이클리스트로 활동했고, 현재는 팀 감독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그가 남긴 숫자는 다음과 같습니다. 프로 커리어 통산 525승. 그랑투르 11회 (투르 5, 지로 5, 부엘타 1). 세계 선수권대회 로드 레이스 3회 (1967, 1971, 1974). 기념비 레이스 19회. 투르 드 프랑스 스테이지 34승. 지로 디탈리아 스테이지 24승.
525승. 이 숫자는 단순한 기록이 아닙니다. 프로 커리어 기간(1965~1978)을 감안하면 연평균 약 40승에 가깝습니다. 오늘날 탑 선수들이 시즌에 10~15승을 거두는 것과 비교할 때, 이 숫자가 얼마나 다른 세계의 이야기인지 가늠할 수 있습니다.
에필로그 — 왜 머크스인가
스포츠 역사에서 "한 종목을 가장 완전하게 지배한 선수"를 꼽을 때 반드시 등장하는 이름들이 있습니다. 마이클 조던, 페더러, 타이거 우즈, 세레나 윌리엄스. 에디 머크스는 그 리스트에서 빠지지 않습니다.
그가 특별한 이유는 기록의 크기만이 아닙니다. 그 기록이 만들어진 방식 때문입니다. 머크스는 산악도, 평지도, 타임트라이얼도 모두 이겼습니다. 하루짜리 클래식도, 3주짜리 그랑투르도 모두 이겼습니다. 봄도, 여름도, 가을도 이겼습니다.
사이클링은 오늘날 극도로 분업화됐습니다. 클라이머는 산을 타고, 스프린터는 평지에서 달리고, 타임트라이얼리스트는 독주에 특화됩니다. 그랑투르를 노리는 선수는 클래식을 포기합니다. 그것이 현대 사이클링의 합리적 전략입니다.

머크스는 그 구분이 없었습니다. 혹은 그 구분을 무시했습니다. 그것이 가능했던 이유가 순전히 신체 능력이었는지, 아니면 이기고자 하는 의지의 크기였는지, 아직도 사이클링 팬들 사이에서 이야기됩니다.
"이길 수 있는 상황에서 이기지 않는다는 것이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525번의 승리 중 단 한 번도, 그는 이기지 않아도 되는 레이스에서 천천히 달리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의 이름이 캐니발이었습니다.
'🏛️ 레전드 아카이브 (Legends Archive)' 카테고리의 다른 글
| 프란츠 베켄바워 — 카이저, 선수로 월드컵 감독으로 월드컵을 들다 (0) | 2026.04.06 |
|---|---|
| 보 잭슨 — 두 개의 유니폼, 부상이 훔쳐간 전설 (2) | 2026.04.03 |
| 마이크 타이슨 — 브라운스빌의 짐승, 가장 빠른 주먹 (0) | 2026.03.30 |
| "숫자로 GOAT 논쟁을 끝내다"... 테니스의 지배자, 노박 조코비치 (0) | 2026.03.28 |
| "마흔여섯에도 161km를 뿌린 텍사스 특급"... 놀란 라이언의 5,714 탈삼진 (0) | 2026.03.26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