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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전드 아카이브 (Legends Archive)

그레그 레먼드-총알을 맞고 투르 드 프랑스를 이겼다

by 스포토리 2026. 4.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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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CLING 1980 – 1994
그레그 레먼드
— 총알을 맞고 투르 드 프랑스를 이겼다
투르 드 프랑스 3회 총기 사고 8초 역전 미국인 최초 투르 우승 랜스 암스트롱 고발
RIDER RECORD
생년월일1961년 6월 26일 출신미국 캘리포니아 / 네바다 레노 성장
투르 드 프랑스3회 우승 (1986, 1989, 1990) 세계 선수권2회 우승 (1983, 1989)
총기 사고1987년 4월 · 산탄 41발 · 사경 1989년 기록마지막 스테이지 8초 역전 우승
은퇴1994년 (납 중독 만성화) 특이사항암스트롱 도핑 의혹 최초 공개 제기

프롤로그 — 1989년 7월 23일, 파리 샹젤리제

1989년 7월 23일, 파리.

 

투르 드 프랑스 마지막 스테이지. 개인 타임트라이얼. 24.5킬로미터. 샹젤리제에서 출발해 개선문을 향해 달리는 코스.

alt"그렉 레이몬드"
그레그 레먼드

 

그레그 레먼드는 출발 전 종합 순위 2위였습니다. 1위는 로랑 피뇽. 두 선수의 시간 차이는 50초. 타임트라이얼에서 50초는 결코 작은 차이가 아닙니다. 마지막 스테이지에서 이 격차를 뒤집는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웠습니다.

 

레먼드가 달렸습니다. 평균 속도 시속 54.545킬로미터. 당시 투르 타임트라이얼 역대 최고 속도였습니다.

 

피뇽의 기록이 나왔습니다. 레먼드보다 58초 느렸습니다. 최종 격차 8초. 레먼드가 역전했습니다.

 

투르 드 프랑스 역사상 마지막 스테이지에서 이루어진 최소 격차 역전 우승. 그 8초는 지금도 투르 역사에서 가장 극적인 숫자로 기억됩니다.

 

그 경기를 하기 2년 전, 레먼드는 총알 41발을 몸에 맞고 죽음의 문 앞에 서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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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 — 네바다 소년, 자전거를 만나다

그레고리 제임스 레먼드는 1961년 6월 26일, 캘리포니아 주 로스앤젤레스에서 태어났습니다. 이후 가족이 네바다 주 레노로 이사했고, 그곳에서 자랐습니다.

 

자전거를 본격적으로 타기 시작한 것은 열네 살이었습니다. 스키를 즐기던 가족과 함께 여름에도 체력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으로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레먼드는 첫 레이스에서 자신이 다른 아이들과 다르다는 것을 바로 알아챘습니다.

 

열여섯 살에 주니어 전국 선수권에서 우승했습니다. 열일곱 살에 세계 주니어 선수권 은메달. 열여덟 살에 세계 주니어 선수권 금메달. 당시 유럽 프로팀들이 미국 십 대 선수에게 러브콜을 보내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었습니다.

 

레먼드의 VO2 Max(최대 산소 섭취량)는 당시 측정된 사이클 선수 중 역대 최고 수준이었습니다. 심폐 기능이 선천적으로 비정상적으로 높았습니다. 1980년, 열아홉 살의 레먼드는 프랑스 프로팀 르노-지탄과 계약하고 유럽으로 건너갔습니다.


2장 — 유럽으로, 아메리칸의 도전

1980년대 초 유럽 사이클링은 벨기에와 프랑스, 이탈리아 선수들이 지배하는 세계였습니다. 미국인이 그 세계에서 경쟁한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alt"그레그 레먼드"
그레그 레먼드

 

레먼드는 달랐습니다. 르노팀에서 그의 팀 동료는 베르나르 이노였습니다. 당시 이노는 이미 투르 드 프랑스 4회 우승자로 프랑스 사이클링의 영웅이었습니다.

 

1983년 세계 선수권에서 우승하며 프로 세계에서의 실력을 증명했습니다. 미국인 사이클 선수의 세계 선수권 우승은 역사상 처음이었습니다.

 

이노와 레먼드의 관계는 복잡했습니다. 팀 동료이면서 잠재적 라이벌. 1985년 투르에서 레먼드는 이노를 위해 어시스트 역할을 했습니다. 그리고 이노는 다음 해 레먼드를 돕겠다고 약속했습니다.


3장 — 1986년 첫 번째 투르 드 프랑스

1986년 투르 드 프랑스. 이노는 은퇴를 앞두고 마지막 타이틀을 원했습니다. 그러나 레먼드도 우승을 원했습니다. 두 선수는 같은 팀이었습니다.

 

이노는 초반에 레이스를 주도했고, 레먼드가 따라오는 것을 원하지 않는 것처럼 행동했습니다. 그러나 알프스 구간에서 레먼드의 진가가 드러났습니다. 산에서 레먼드는 이노를 압도했습니다.

alt"그레그 레먼드"
그레그 레먼드

 

최종 결과는 레먼드 우승, 이노 2위. 두 사람의 시간 차이는 3분 10초였습니다.

 

미국인 최초의 투르 드 프랑스 우승. 레먼드는 스물다섯 살이었습니다. 전성기의 시작이었습니다.


4장 — 1987년 4월, 총기 사고

1987년 4월 20일, 캘리포니아 주 링컨 인근.

 

레먼드는 처남 패트릭 보와 삼촌 로드 크리트싱어와 함께 칠면조 사냥을 하고 있었습니다. 관목 숲을 헤쳐 나가던 중, 패트릭이 새를 향해 산탄총을 발사했습니다. 총구 방향이 잘못됐습니다.

 

산탄이 레먼드에게 쏟아졌습니다. 77발의 산탄 중 41발이 레먼드의 몸에 박혔습니다. 등, 옆구리, 간, 소장. 산탄 두 발은 심장 바로 옆에 박혔습니다.

 

헬리콥터가 오기까지 레먼드는 들판에서 피를 흘렸습니다. 혈액의 3분의 1을 잃었습니다. 병원에 도착했을 때 의사들은 생존 가능성을 낙관하지 않았습니다. 수술은 성공했습니다. 그러나 레먼드의 몸속에는 지금도 산탄 35발이 남아 있습니다. 심장 근처의 두 발은 제거 수술이 너무 위험해 그냥 뒀습니다.

 

사이클 커리어가 끝났다는 것이 상식적인 판단이었습니다.


5장 — 사경에서 돌아오다

회복은 길고 고통스러웠습니다. 폐에 물이 찼고, 감염이 반복됐습니다. 처음에는 걷는 것도 힘들었습니다.

alt"그레그 레먼드 총격 사건"
그레그 레먼드 총격 사건

 

그러나 레먼드는 자전거를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1988년, 부상 이후 처음으로 투르 드 프랑스에 출전했습니다. 결과는 27위였습니다. 비판이 쏟아졌습니다. 그가 다시는 예전 수준으로 돌아올 수 없다는 이야기가 공공연히 나왔습니다. 팀들이 그를 원하지 않았습니다.

 

ADR이라는 벨기에 소팀이 레먼드와 계약했습니다. 몸속의 산탄이 문제였습니다. 납 중독 증세가 나타났습니다. 피로가 만성적이었습니다. 훈련이 예전만큼 쌓이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레먼드는 계속했습니다.


6장 — 1989년, 8초의 기적

1989년 투르 드 프랑스는 레먼드에게 마지막 기회처럼 보였습니다.

 

그해 레먼드는 달랐습니다. 산악 구간에서 무너지지 않았습니다. 타임트라이얼에서 강했습니다. 그러나 로랑 피뇽이 더 강했습니다. 마지막 스테이지 전 피뇽이 50초 앞서 있었습니다.

 

타임트라이얼을 위해 레먼드는 당시로서는 혁신적인 장비를 선택했습니다. 에어로 핸들바, 에어로 헬멧, 에어로 바이크. 유럽 선수들이 거의 사용하지 않던 장비들이었습니다. 레먼드는 공기 저항을 줄이는 데 집착했고, 그 판단이 옳았습니다.

평균 시속 54.545킬로미터. 피뇽과 58초 차이. 최종 8초 역전.

alt"그레그 레먼드"
그레그 레먼드

 

레먼드가 피니시 라인을 통과하고 피뇽의 기록을 기다리는 순간 — 그 몇 분간의 긴장감은 생방송으로 전 세계에 중계됐습니다. 피뇽의 기록이 확인됐을 때, 레먼드는 자전거 위에서 두 손을 들었습니다. 눈물이 났습니다.

 

총기 사고로 죽음의 문 앞에 섰다가 돌아온 선수. 그가 8초 차로 투르 드 프랑스를 이겼습니다.


7장 — 1990년 세 번째 타이틀

1989년의 기적이 우연이 아니었다는 것을 1990년이 증명했습니다. 레먼드는 1990년 투르 드 프랑스에서도 우승했습니다. 3분 차이로 클로드 크리퀴엘리옹을 꺾었습니다.

 

투르 드 프랑스 3회 우승. 세계 선수권 2회. 레먼드는 1980년대~90년대 초 세계 최고의 사이클 선수 중 한 명으로 확실하게 자리 잡았습니다.

 

그러나 이후 레먼드의 커리어는 다시 내리막을 걸었습니다. 납 중독 증세가 만성화됐고, 훈련을 제대로 소화하지 못했습니다. 1994년, 공식 은퇴를 선언했습니다.


8장 — 레먼드의 유산, 그리고 랜스 암스트롱

레먼드의 이름은 2000년대 들어 랜스 암스트롱과의 관계로 다시 주목받았습니다.

 

암스트롱이 투르 드 프랑스에서 연속 우승을 이어가던 시기, 레먼드는 공개적으로 암스트롱의 도핑 의혹을 제기했습니다. 당시 사이클링 세계에서 암스트롱은 영웅이었고, 레먼드의 발언은 배신자의 행동처럼 받아들여졌습니다.

alt"그레그 레먼드"
그레그 레먼드

 

레먼드는 외압을 받았습니다. 그가 설립한 레먼드 바이크는 트렉(암스트롱의 스폰서)과의 계약을 잃었습니다. 경제적 타격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레먼드의 주장은 옳았습니다. 2012년 암스트롱의 도핑이 공식 확인됐고, 7개의 투르 타이틀이 모두 박탈됐습니다. 레먼드의 3회 우승이 다시 미국인 최다 투르 우승 기록이 됐습니다.


에필로그 — 가장 극적인 복귀

그레그 레먼드의 커리어는 두 개의 서사로 구성됩니다.

 

하나는 실력의 서사입니다. 미국인 최초 세계 선수권 우승, 미국인 최초 투르 드 프랑스 우승, 세 번의 투르 타이틀.

 

다른 하나는 생존의 서사입니다. 총알 41발을 맞고, 피를 흘리며 들판에 누웠다가, 2년 만에 돌아와 마지막 스테이지 8초 역전으로 투르를 이겼습니다.

alt"그레그 레먼드"
그레그 레먼드

 

두 번째 서사가 더 강렬합니다. 스포츠 역사에서 총기 사고로 죽음 직전까지 갔다가 세계 최고 권위의 레이스에서 우승한 선수는 레먼드 외에 없습니다.

 

8초. 그 숫자가 레먼드의 이름 옆에 영원히 붙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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