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흥민이 울지 않고 환하게 웃었다. 그동안 손흥민이 필드 위에서 서럽게 울던 모습만 기억하던 팬들에게는 그 어느 때보다 반가운 시간이었다. 세계가 대한민국의 병역 의무에 관심을 가질 정도로 손흥민이 출전한 아시안게임 축구에 대해 관심을 가졌다. 그만큼 손흥민의 존재감이 크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주장으로 최선을 다한 손흥민 충분한 자격을 가졌다
이타적인 플레이는 대표팀 전체를 원활하게 움직일 수 있게 만들었다. 손흥민이 공격만 하겠다고 나서고 모든 골 기회는 자신이 가지려고만 했다면 대표팀은 조기 탈락했을 가능성이 높았다. 이기적인 플레이를 하게 되면 팀 전체의 균형이 무너지게 된다. 축구는 개인 경기가 아닌 팀워크가 무엇보다 중요한 스포츠이기 때문이다.
일본이 결승까지 올라와서 연장전까지 이끈 힘 역시 팀워크의 힘이다. 상대적 전력이나 대표팀 개인의 능력을 보면 이미 상당수의 점수 차로 쉽게 이겨야 하는 경기였기 때문이다. 한일전이라는 특수성, 그리고 한국 대표팀에게는 부정할 수 없는 군면제라는 거대한 당근까지 걸린 경기는 쉬울 수 없었다.
준결승에서 멋진 모습으로 2골이나 넣었던 이승우를 선발로 내세우지 않았다. 9골을 넣은 황의조는 이번에도 선발로 나섰지만 무리수였다. 지칠대로 지친 상태에서 황의조보다는 한껏 몸이 올라온 이승우를 선발로 내세웠다면 보다 일본을 압박하는 경기가 되었을 것이다.
초반 결정적 상황에서 지치지 않았다면 황의조는 골을 넣었을 것이다. 발에 걸리면 모두 골이라도 해도 좋을 정도로 절정의 상황이었다는 점에서 황의조에게 간 기회가 실패로 끝날 것이라 보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미 말도 안 되는 스케줄을 소화한 상태에서 모든 것은 힘들 수밖에 없었다.
전반 점수를 먼저 내는 것은 너무 중요했다. 주도권을 잡는 것이 한국 대표팀에는 중요했기 때문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은 일본으로서는 져도 나쁘지 않다. 이미 절대적으로 열악한 전력인 상황에서 진다고 비난을 받을 이유는 없기 때문이다. 일본 방송에서 중계도 하지 않을 정도로 관심이 없었고, 한국에서는 한일전이라는 특수성까지 더해 전혀 다른 온도 차에서 경기를 했다.
득점이 없으며 불안해지는 것은 한국 대표팀이었다. 전체적으로 우세한 경기력으로 압도해가고 있었지만 골이 나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 앞선 동메달 결정전에서 베트남이 힘겹게 동점을 만들고 승부차기에서 패했듯, 결국 골을 넣는 팀이 이길 수밖에 없다. 무승부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 바로 토너먼트 결승이다.
부상이 완쾌되지 않은 상황에서도 준결승과 결승에서 좋은 모습을 보인 조원우는 든든한 골키퍼 역할을 충실하게 해주었다. 공격에 비해 수비가 약한 공백을 조원우는 잘 채워줬다. 전반 일본의 공격을 막아낸 결정적 장면도 조원우이기에 가능했다.
좀처럼 풀리지 않던 경기는 연장 전반 이승우의 한 방으로 결정났다. 혼전 중 뒤에서 치고 나오던 이승우는 손흥민이 가지고 있던 공을 그대로 슛으로 연결해 귀중한 선취골을 넣었다. 혼전 중이었다. 수비수들이 손흥민에 집중하고 있던 상황에서 슛으로 연결하기는 어려운 상황이었다.
이승우는 자신에게 공을 달라했고 손흥민은 욕심을 내지 않았다. 그렇게 귀중한 첫 골이 만들어졌다. 손흥민이 욕심을 냈다면 이후 상황이 어떻게 되었을지 알 수 없었다는 점에서 이타심은 곧 팀 전체를 살린 이유가 되었다. 이후 손흥민의 프리킥을 황희찬이 돌고래처럼 뛰어올라 헤딩슛으로 넣는 장면은 압권이었다.
모두가 지친 상황에서 높게 올려준 손흥민의 프리킥을 일본 수비수를 압도하는 점프로 뛰어올라 골키퍼가 사력을 다해도 잡을 수 없는 곳으로 넣어버린 황희찬의 골 역시 대단했다. 전후반 90분 동안 그렇게 터지지 않던 골은 후반 시작과 함께 모두 손흥민으로 시작해 이승우와 황희찬의 골로 이어졌다.
일본의 마지막 역습은 날카로웠다. 그렇게 실점을 하며 추격을 당하는 과정에서 남은 5분은 어쩌면 모두에게 세상에서 가장 긴 5분이었을 것이다. 아시안게임 축구 결승에서 한국은 일본에 2-1로 승리하며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인천에 이어 이번 대회에도 우승을 하며 아시안게임 축구 최다 우승국이 되었다.
경기가 끝나자마자 손흥민의 소속팀인 토트넘은 SNS를 통해 축하 메시지를 보냈다. 그리고 영국 현지에서도 손흥민이 군면제를 받았다는 사실을 속보로 내보낼 정도로 화제였다. 아시안게임 전 손흥민은 소속팀인 토트넘과 5년 재계약을 맺었다. 토트넘의 도박은 성공했고, 손흥민은 이제 온전히 자신과 싸움만 하면 되게 되었다.
황희찬의 새로운 소속 팀이 된 함부르크 역시 그의 골 소식과 함께 우승에 대해 축하 메시지를 보냈다. 이승우 소속사인 베로나 역시 한글 메시지로 축하를 전했다. 황희찬으로서는 임대 된 함부르크 소속팀과 인사도 하기 전 축하를 받은 셈이 되었다.
이승우의 금메달로 인해 베로나는 대박을 내게 되었다. AC밀란이 오퍼를 준비하고 있다는 소식도 전해지고 있는 상황에서 이미 베로나는 가격표까지 매겨 놓은 상태다. 계속 팀에 남아도 좋고 다른 팀으로 간다면 엄청나게 남는 장사를 할 수 있다는 점에서 베로나에게 이승우는 보배가 되었다.
이번 대회에서는 와일드 카드로 뽑은 세 선수가 모두 최고였다. 조현우, 황의조, 손흥민 모두 이번 대회에서 가장 두드러진 실력으로 팀을 우승으로 이끌었기 때문이다. 황의조는 김학범 감독의 애제자라는 이유로 선발 과정에서 비난을 받았다. 하지만 실력으로 모든 의혹을 잠재웠다. 9골로 득점왕이 되었고 엄청난 체력으로 한국 대표팀을 든든하게 받쳐줬다는 점에서 최고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조현우 골키퍼의 경우 부상으로 2경기를 나서지 못했지만, 이후 중요한 순간 골문을 막으며 한국 대표팀 금메달의 일등공신이 되었다. 안정적인 모습으로 월드컵에서 세계 축구 팬들의 주목을 받았던 조현우는 아시안게임에서도 탁월한 능력으로 불안한 수비 조직까지 이끌며 값진 승리를 얻어냈다.
손흥민은 팀의 주장으로 가장 마음 고생이 심했던 선수였다. 월드컵에서도 올림픽과 아시안게임에서도 손흥민의 군면제가 항상 화두가 되면서 마치 그를 위한 경기를 하는 듯한 부담감을 피할 수는 없었을 듯하다. 한국이 낳은 최고의 선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그에 대한 팬들의 지지와 응원은 대단한 힘이기도 하지만 부담일 수밖에 없었다.
윙어와 중원의 지배자로, 혹은 수비수가 되기도 하는 등 그는 철저하게 팀워크에 초점을 맞춰 자신을 희생했다. 욕심을 버리고 최대한 팀이 승리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기 위해 노력한 손흥민이 있었기 때문에 금메달도 가능했다. 결승에서도 두 골 모두 손흥민의 발에서 나왔다는 사실이 모든 것을 이야기해준다.
상대 팀의 집중 마크를 받을 수밖에 없는 선수가 손흥민이다. 이번 대회 출전 선수 중 손흥민을 능가하는 선수가 없다는 점에서 더욱 그에 대한 압박은 커질 수밖에 없었다. 그런 압박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승리를 이끌어낸 손흥민은 정말 대단한 선수임은 분명하다.
몇 년 동안 많은 축구 팬들의 지상과제였던 손흥민 군면제 기원도 이제 막을 내렸다. 많은 이들이 응원했듯, 손흥민은 꼼수가 아닌 자신의 실력으로 당당히 금메달을 따서 오직 축구에만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 이타적인 행동과 주장으로 팀을 이끌어낸 그의 능력은 필드 위 실력 이상이었다.
손흥민이 동료와 후배들에게 이야기를 했듯, 두려워하지 말고 유럽 무대로 진출하는 선수들이 늘어나기 바란다. 조현우의 첫 골키퍼 유럽 진출도 충분히 기대해 볼만 하다. 그리고 이미 유럽에서 뛰는 선수들 역시 보다 성장한 모습으로 한국 축구의 미래를 밝혀주기를 바란다. 아시안 게임 2회 연속 금메달은 그저 얻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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