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6년 3월 20일 일요일 오전, 런던 웨스트민스터 중앙 홀. 쥘 리메 트로피가 우표 전시회 행사 중 전시되고 있었다. 6명의 경비원이 지키고 있었다. 그리고 누군가 자물쇠를 따고 트로피를 들고 사라졌다. 스코틀랜드 야드가 수사에 나섰지만 트로피는 나오지 않았다. 대회 개막까지 4개월이 남아 있었다. 잉글랜드 축구협회는 몰래 복제품 제작을 의뢰했다.
그로부터 7일 후, 런던 남동부 비울라 힐의 한 주택가. 데이비드 코벳이 반려견 픽클스(Pickles)와 산책을 하다 담장 아래 낡은 신문지에 싸인 꾸러미를 발견했다. 픽클스가 냄새를 맡고 파헤쳤다. 꾸러미 안에 트로피가 있었다. 잉글랜드는 안도했다. 그리고 여름에 그 트로피를 직접 들어올렸다.
축구를 만든 나라가 처음으로 챔피언이 된 날
1863년 FA를 창설하고 축구의 규칙을 만든 나라. 그러나 첫 번째 월드컵이 열린 1930년부터 잉글랜드는 참가조차 하지 않았다. 자신들이 만든 게임이니 다른 나라들의 대회에 나갈 필요가 없다는 오만함이었다. 잉글랜드가 처음으로 월드컵에 참가한 것은 1950년이었고, 그해 미국에게 1-0으로 패하는 충격을 당했다.

1966년, 드디어 자국에서 대회가 열렸다. 감독 앨프 램지(Alf Ramsey)는 '날개 없는 사람들(Wingless Wonders)'이라는 별명을 얻은 실용적인 4-4-2 전술로 대회를 준비했다. 전통적인 윙어를 없애고 중원을 단단히 메우는 방식이었다. 아름답지는 않았지만 효율적이었다.
잉글랜드는 조별리그를 무실점으로 통과했다. 8강에서 아르헨티나를 꺾을 때는 아르헨티나 주장 안토니오 라틴(Antonio Rattin)이 퇴장 명령을 거부하며 10분 넘게 경기장을 떠나지 않는 소동이 벌어졌다. 4강에서는 에우제비오의 포르투갈을 2-1로 꺾었다. 그리고 웸블리 결승에서 서독을 만났다.
논란의 세 번째 골 — 선이 넘었는가
1966년 7월 30일, 웸블리. 잉글랜드가 서독과 맞붙었다. 서독이 먼저 선제골을 넣었다. 잉글랜드가 역전했다. 그러나 서독이 후반 막판 동점골을 넣어 연장전으로 끌고 갔다.
연장 전반 11분, 제프 허스트(Geoff Hurst)의 슛이 크로스바를 강하게 맞고 골라인 쪽으로 떨어졌다. 공이 선을 넘었는가. 잉글랜드 선수들은 두 손을 들고 골을 주장했다. 서독 수비수들은 고개를 저었다. 소련인 선심 토피크 바흐라모프(Tofik Bakhramov)가 주심에게 골이라는 신호를 보냈다. 득점이 인정되었다. 잉글랜드 3-2 서독.
막판 허스트가 쐐기골을 넣으며 4-2로 끝났다. 그 순간 BBC 해설자 케네스 울스텐홀름(Kenneth Wolstenholme)의 목소리가 영국 축구 역사에 영원히 남았다. "몇몇 사람들이 경기장으로 들어오고 있습니다. 그들은 이미 끝났다고 생각하는 것 같군요... 이제 정말 끝났습니다. 4골입니다!"
세 번째 골이 선을 넘었는지는 지금도 논쟁이다. 2000년대 들어 컴퓨터 분석 결과 공이 선을 완전히 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서독, 즉 오늘날의 독일은 지금도 그 골을 인정하지 않는다.

1966 월드컵 결승 — 잉글랜드 vs 서독 득점 흐름
관중: 96,924명 · 장소: 웸블리 스타디움, 런던
픽클스, 에우제비오, 그리고 잉글랜드의 마지막
이 대회에는 또 다른 주인공이 있었다. 포르투갈의 에우제비오(Eusébio)였다. 모잠비크 출신으로 포르투갈 국적을 취득한 이 스트라이커는 대회 득점왕(9골)을 차지했다. 잉글랜드에게 4강에서 패했지만, 그가 웸블리를 떠날 때 눈물을 흘리는 장면은 전 세계에 중계되었다. 패자의 눈물이 이토록 아름다웠던 적이 없었다.

그리고 픽클스. 트로피를 찾아낸 개는 일약 영국의 국민 영웅이 되었다. TV에 출연했고, 영화에도 등장했다. 주인 데이비드 코벳은 상금으로 약 5,000파운드를 받았다. 픽클스는 1967년 목줄이 나무에 걸려 목이 졸려 사망했다. 그의 주인은 이렇게 말했다. "그 빌어먹을 트로피를 찾지 않았으면 좋았을 걸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1966년 7월 30일 이후, 잉글랜드는 다시 월드컵을 들어올리지 못했다. 축구의 고향이 마지막으로 왕좌에 앉은 날로부터 이제 60년이 흘렀다. "It's coming home"은 그래서 노래가 되었다. 아직 오지 않은 것에 대한 믿음이 노래가 될 때, 그것은 이미 신화가 된다.
Football World History — 월드컵 특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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