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7월 9일 밤 10시, 베를린 올림피아슈타디온. 연장 후반 110분. 지단이 마테라치와 나란히 미드필드 쪽으로 걷고 있었다. 두 선수 사이에 말이 오갔다. 지단이 몇 발짝 앞으로 나아갔다. 그리고 멈췄다. 돌아섰다. 머리를 낮추며 마테라치의 가슴을 향해 돌진했다. 마테라치가 쓰러졌다. 지단은 그 자리에 섰다. 혼자, 고요하게.
그것이 지네딘 지단의 마지막 장면이었다. FIFA 세계 최우수 선수 3회, 발롱도르 1회, 챔피언스리그, 프리메라리가, 세리에A, 월드컵, 유러피언 챔피언십. 그 모든 것의 마지막이 레드카드였다.
여름 동화 — 독일이 스스로를 다시 발견한 한 달
2006년 독일의 여름은 기상학적으로도 이례적이었다. 대회 내내 쨍쨍한 햇살이 이어졌다.독일 전역의 팬 존에 전 세계 팬들이 모여들었고, 평소 절제된 태도로 알려진 독일 국민들이 거리에서 공개적으로 환호했다. 흑·적·금의 국기가 집과 자동차를 장식했다. 한 세대 전에는 상상하기 어려운 국가적 자부심의 표출이었다.
잉글랜드 팬들은 적대적 분위기를 예상하며 왔다가 파티 분위기에 놀랐다. "독일 사람들이 다 어디 있는 거야? 만나는 사람마다 친절하고 축제 중이잖아."팬 페스티벌은 현대 월드컵의 새로운 문화가 되었다. 베를린 브란덴부르크 문에서 승전 기념탑까지 이어지는 '팬 마일'에는 독일이 뛸 때마다 100만 명 가까운 팬들이 모였다. FIFA와 12개 개최 도시는 이 혁신적인 공공 시청 개념으로 이듬해 독일 마케팅상을 수상했다.
'팬마일레(Fanmeile)'는 그해 독일의 올해의 단어로 선정되었다.
독일 대표팀을 이끈 것은 캘리포니아에서 생활하던 전 스트라이커 위르겐 클린스만이었다. 이전 독일 감독들의 엄격함과 달리 카리스마와 긍정 에너지로 팀을 이끌었다. 훈련 방식이 파격적이었고 선발 선택이 과감했으며 팀은 공격적인 축구로 대회를 누볐다.
루카스 포돌스키와 미로슬라프 클로제가 이끄는 젊은 독일이 대회를 달궜다. 클로제는 대회 5골로 득점왕을 차지했다.
칼치오폴리의 그림자 — 이탈리아의 맥락
이탈리아는 세계 챔피언을 노리며 독일에 왔지만 짐이 무거웠다.
2006년 5월, 세리에A를 뒤흔든 심판 매수 스캔들 '칼치오폴리(Calciopoli)'가 터졌다. 클럽 임원들과 심판 배정 기관 사이의 부적절한 관계가 드러났다.
유벤투스가 가장 크게 연루되었다.
이탈리아 대표팀 선발 11명 중 7명은 자신이 다음 시즌 어느 부문에서 뛸지조차 알지 못한 채 독일로 향했다.
그러나 그 외부 압박이 역설적으로 팀을 단결시켰다.
이탈리아는 스캔들을 팀의 동력으로 바꿨다.
부폰, 카나바로, 가투소, 피를로, 토티가 한 팀이었다. 대회를 통해
부폰이 허용한 공은 단 2골이었다. 하나는 자책골이었고 하나는 페널티킥이었다.
야전의 전사들이었다.
4강 도르트문트에서 이탈리아와 독일이 맞붙었다. 118분 동안 0-0. 65,000명의 홈 팬들 앞에서 독일은 버텼다. 그리고 119분, 파비오 그로소가 파를로의 패스를 받아 레만 앞에서 왼발로 감아 찼다. 그 직후 알레산드로 델 피에로가 두 번째 골을 더했다. 여름 동화가 끝났다.
독일은 3위 결정전에서 포르투갈을 꺾고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2006 4강 — 독일 vs 이탈리아 (도르트문트)
이 경기를 가든 최고의 4강으로 꼽은 가디언 특파원 12명 중 8명 · FIFA 트위터 투표 '가장 다시 보고 싶은 2006 경기' 1위
지단의 마지막 월드컵 — 퇴장 전까지의 걸작
지단은 2004년 은퇴를 선언했다가 2005년 복귀했다.
2006년 4월, 그는 이 월드컵을 끝으로 완전히 은퇴하겠다고 발표했다.
34세의 미드필더에게 마지막 무대였다.
8강에서 지단이 보여준 경기는 이 대회 최고의 개인 퍼포먼스였다. 브라질과의 8강전에서 프랑스가 1-0으로 이겼다.
지단이 경기를 지배하며 브라질의 공격을 무력화했다. 그 경기는 지단이 단지 위대한 선수가 아니라 전략적 지휘관임을 보여줬다.
4강 포르투갈전에서도 페널티킥 골로 1-0 승리를 이끌었다. 프랑스는 결승에 올랐다.
결승 7분, 마루아다의 헤더 패스를 받은 마루아다가 페널티 박스에서 마테라치에게 쓰러졌다. 페널티킥. 지단이 나섰다.

파네카 페널티 — 골키퍼가 뛰어드는 순간 힘 없이 중앙으로 살짝 밀어 넣는 기술 — 을 시도했다. 공이 크로스바 아래쪽을 맞고 골라인 안으로 떨어졌다.
1-0. 19분,
마테라치가 피를로의 코너킥 상황에서 헤더로 동점골을 넣었다.
1-1. 이후 경기는 팽팽했고 연장으로 이어졌다.
110분 — 그 말과 그 순간
연장 후반 10분, 지단과 마테라치가 이탈리아 페널티 박스 안에서 뒤엉켰다. 마테라치가 지단의 가슴에 팔을 걸쳤다. 공이 걷어졌다. 두 선수가 미드필드 쪽으로 걸어 나오며 말이 오갔다.마테라치에 따르면, 지단이 "내 유니폼을 원하면 경기 후에 줄게"라고 먼저 말했다. 마테라치는 "유니폼보다 네 누나가 더 낫겠다"고 받아쳤다.
당시 지단의 누나 릴라는 병상에 있는 어머니를 돌보고 있었다. 지단은 훗날 이렇게 말했다. "그는 내 어머니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순간 어머니와 함께 있던 내 누나에 대해 모욕적인 말을 했다. 경기 중에 서로 나쁜 말을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날 그 말은 뭔가를 건드렸다. 단 1초였다. 그리고 끝났다."지단이 돌아서 마테라치의 가슴에 머리를 박았다. 마테라치가 쓰러졌다. 주심과 대부분의 선수들은 반대편에서 공을 쫓고 있었다. 
그러나 4심 루이스 메디나 칸탈레호가 헤드셋으로 주심에게 전달했다. 주심 오라시오 엘리손도가 지단에게 레드카드를 꺼냈다.지단은 터널을 향해 걸어갔다. 고개를 숙이지 않았다. 지나치면서 월드컵 트로피가 보였다. 그는 트로피를 한 번 바라봤다. 그리고 지나쳤다.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2006 월드컵 결승 — 이탈리아 vs 프랑스 득점 흐름
관중: 69,000명 · 장소: 올림피아슈타디온, 베를린 · MVP: 지단 (골든볼) — 퇴장 선수에게 수여된 유일한 사례
마테라치가 낸 책 — 250가지 버전의 진실
사건 직후 영국 타블로이드들이 입 모양 분석 전문가를 고용했다. 데일리 메일, 데일리 스타, 더 선이 마테라치가 지단에게 "테러리스트 창녀의 아들"이라고 불렀다고 보도했다.
마테라치는 즉각 부인하며 세 신문사 모두에 명예훼손 소송을 제기했다. 2008년과 2009년에 세 신문사 모두 법정에서 공개 사과를 했고 데일리 메일은 손해배상금을 지불했다.2006년 말 마테라치는 '내가 진짜로 지단에게 한 말(What I Really Told Zidane)'이라는 책을 출간했다. 책에는 250가지 버전의 발언이 수록되어 있었다. 해리포터 시리즈에서 나오는 세 가지 저주, "푸코가 죽은 이후로 프랑스 철학이 형편없어졌다", "흉골이 정확히 어디 있냐?"까지 포함되었다.
마테라치는 자신의 어머니가 15세에 세상을 떠났기 때문에 절대 어머니에 대해 모욕적인 말을 하지 않는다고 했다.
2010년, 마테라치와 지단은 밀라노의 한 주차장에서 우연히 마주쳤다. 두 사람은 화해했다.
지단은 그 박치기에 대해 마테라치에게는 절대 사과하지 않겠다고 했다. 팬들에게, 팀에게, 축구에게는 사과했지만. "그에게 사과한다면 나 자신과 내가 소중하게 여기는 모든 이들에 대한 예의가 없는 것이다."
"팬들에게, 팀에게, 그리고 축구에게 사과한다. 경기가 끝나고 라커룸으로 들어가 모두에게 말했다. '용서해줘, 이것이 아무것도 바꾸지 못하겠지만 미안해.' 하지만 그에게는 절대로. 절대. 그렇게 하는 것은 나 자신을 욕보이는 것이다. 차라리 죽는 것이 낫겠다."
— 지네딘 지단, 박치기 사건 이후 인터뷰
이탈리아 우승 — 스캔들 속의 4번째 별
승부차기에서 이탈리아의 첫 4명이 모두 성공했다. 프랑스는 트레제게가 크로스바를 맞혔다. 파비오 그로소가 다섯 번째 킥을 성공시켰다. 이탈리아의 4번째 월드컵이었다.
결승 직후 칼치오폴리 판결이 나왔다. 유벤투스가 세리에B로 강등되었다.
우승의 기쁨과 강등의 고통이 동시에 이탈리아를 덮쳤다. 대표팀 선수 상당수가 자신이 다음 시즌 어느 팀 소속인지도 모르는 상태로 챔피언이 되었다.
지단은 레드카드를 받은 채로 이 대회 골든볼(최우수 선수상)을 수상했다. 퇴장당한 선수에게 대회 MVP가 돌아간 것은 역대 월드컵에서 이때가 유일하다.
그것이 2006년의 가장 기묘한 아이러니였다. 자신을 추방한 대회가 그에게 최고의 상을 돌려줬다.
2006년 독일의 여름. 한 나라가 '여름 동화'를 쓰며 세상 앞에서 새롭게 태어났다. 스캔들에 시달리던 이탈리아는 그 압박을 결집의 동력으로 바꿨다. 그리고 역대 가장 위대한 축구 선수 중 한 명이 마지막 경기를 레드카드로 마쳤다. 세 이야기가 한 달 안에 교차했고, 그 중심에는 늘 공이 있었다. 축구는 그렇게 위대하고, 그렇게 잔인하다.
Football World History — 월드컵 특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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