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아가 마운드 불안으로 패배했다. 충분히 이길 수 있는 경기를 내줬다는 느낌을 버릴 수 없다. 한 이닝에 4구만 여섯 개를 내주고 이기기는 어렵다. 투수가 스트라이크를 던질 수 없다면 그건 투수가 아니다. 기아의 고질적인 문제들이 가장 안 좋은 상황에서 드러나고 있다는 점이 씁쓸하다.
다시 무너진 한승혁 좀처럼 성장하지 못하는 아기 호랑이
아쉬운 경기였다. 1-7로 뒤진 경기를 동점까지 만들고서 9회 말 첫 타자인 초이스에게 끝내기 홈런을 맞고 경기를 내줬기 때문이다. 최소한 한꺼번에 무너지지만 않았어도 오늘 경기 역시 기아가 승리할 가능성은 높았다. 업다운이 심하기는 하지만 타격이 최근 조금은 그 간격들을 낮춰가고 있기 때문이다.
선취점은 기아가 먼저 뽑았다. 1사 후 이명기가 넥센 선발 신재영을 상대로 3루타로 득점 기회를 만들었다. 사실 이 공은 2루타였다. 타구가 펜스 하단에 끼었기 때문에 2루타로 처리되지만 넥센 중견수 임병욱이 룰을 이용하지 않고 송구를 하며 3루타가 만들어졌다.
안치홍의 적시타로 선취점을 뽑은 기아는 손쉽게 경기를 풀어갈 것으로 기대되었다. 신재영이 신인상 이후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는 점에서 충분히 압도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었다. 하지만 기아 타선은 신재영 공략에 실패했다. 2, 3회 삼자 범퇴로 물러난 후 대량 실점을 한 후 4회 반격을 하는 듯했다.
선두 타자 안치홍이 2루타로 포문을 열었지만 최형우가 삼진으로 물러나며 기회를 놓쳤다. 득점타가 너무 안 나오는 4번 타자의 문제는 아쉬움으로 다가온다. 김주찬이 내야 안타를 치기는 했지만, 나지완과 이범호가 연속 삼진으로 물러나며 추격 기회를 놓쳤다.
나지완의 부진은 끝이 안 보일 정도로 심각하다. 몸에라도 맞고 나가려는 노력을 하는 것까지는 좋지만 스스로 슬럼프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팀 전체에게 큰 문제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 기아 타선이 무기력해진 것과 달리, 넥센 타선은 주전들이 대거 빠진 상황에서 기아 투수들의 난조를 놓치지 않고 3회 빅이닝을 만들어냈다.
넥센의 3회 공격은 최악의 마운드가 만든 참사였다. 홈런이나 장타들을 맞으며 대량 실점을 했다면 이 정도로 답답하지는 않았을 듯하다. 2회까지 나쁘지는 않았던 한승혁이었지만 3회 난조를 보이며 좀처럼 상대를 압도하지 못했다. 1회 첫 타자부터 제구력 문제가 나오기는 했지만, 조금씩 잡혀갈 것으로 기대했었다.
제구 난조가 시작되며 3회 시작과 함께 연속 볼넷을 내준 한승혁은 좀처럼 넥센 타자들을 압도하지 못했다. 마치 스트라이크를 던지지 못하는 투수처럼 말이다. 한승혁은 초이스에게 연속 볼을 던지자 기아 벤치는 급하게 이민우를 마운드에 올렸다. 하지만 이민우 역시 제구력이 엉망인 것은 마찬가지였다.
밀어내기를 연이어 내준 이민우를 내리고 1군으로 올라온 심동섭까지 나섰다. 3회 기아 마운드는 세 명의 투수가 나왔다. 그리고 그들은 6개의 4구를 내줬다. 기록이다. 한 이닝에 6개의 4구를 내준 황당한 기록이 다시 기아 투수들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점이 당혹스럽기까지 하다.
한승혁은 두 경기 연속 조기 강판 당하며 선발 기회를 잡기 어려워졌다. 스피드는 좋지만 그저 속구 하나로 프로에서 통할 수는 없다. 변화구 제구가 되면 좋은 기록을 만들지만, 그렇지 못하는 날은 오늘처럼 엉망이 된다. 이런 식으로 선발 한 자리를 차지할 수는 없다.
기아는 넥센 선발 신재영이 내려간 6회 다시 타선이 살아나기 시작했다. 김성민은 1사후 안치홍에게 4구를 내준 것이 아쉬웠다. 최형우의 안타에 이어 나지완까지 4구를 얻어 나간 후 이범호가 적시타를 치며 추격은 시작되었다. 버나디나를 대신해 선발 출장한 이영욱이 전 타석에 이어 다시 안타를 치며 4-7까지 점수 차를 좁혔다.
7회에도 기아 타선은 활발했다. 김선빈과 이명기가 연속 안타로 나가고 최형우의 적시 2루타로 5-7까지 추격했다. 넥센은 김주찬을 고의 4구로 내보내고 타격감이 완전히 떨어진 나지완을 삼진으로 잡으며 성공하는 듯했다. 하지만 전 타석에서 적시타를 쳤던 이범호는 다시 한 번 기회를 놓치지 않고 만루 상황에서 동점 적시타를 쳤다.
완전히 밀린 경기를 기아는 6, 7회 3점씩을 얻으며 동점까지 만들었다. 이런 기세라면 역전도 가능해 보인 경기였다. 하지만 8, 9회 김상수와 조상우를 넘어서지 못했다. 경기 후반 타격감이 급격하게 살아난 이범호에게 다시 타격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는 점이 아쉬울 정도였다.
동점을 만드는 과정에서 심동섭이 2와 1/3이닝 동안 2피안타, 1사사구, 2탈삼진, 무실점으로 잘 막았다. 유승철 역시 1과 2/3이닝 동안 1피안타, 1사사구, 2탈삼진, 무실점으로 막아냈다. 초반 말도 안 되게 대량 실점만 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상황들이었다.
임창용이 2경기 연속 터프 세이브를 올린 상황에서 기아의 불펜 운영은 한정적일 수밖에 없었다. 한승혁이 너무 일찍 내려가며 너무 많은 불펜 자원을 소진한 상태에서 8회를 막은 김윤동은 다시 마운드에 올랐다. 8회 세 타자를 깔끔하게 막았던 만큼 연장 승부를 위해 김윤동의 호투가 기대되었다. 하지만 넥센에는 초이스가 있었다.
9회 선두 타자로 나선 초이스는 김윤동을 상대로 좌측 펜스를 훌쩍 넘기는 끝내기 홈런으로 경기를 마무리했다. 기대만큼 파괴력을 보이지 못하던 초이스의 이 한 방은 넥센을 승리로 이끌었다. 주전 다수가 부상으로 빠진 상황에서도 넥센 타선은 의외로 강했다. 수비 역시 탄탄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점에서 넥센도 화수분 야구가 가능함을 보여준 셈이다.
유승철이 3경기 연속 무실점으로 잘 막아주고 있다는 점은 흥미롭다. 2017년 1라운드 픽이었던 유승철이 현재처럼 성장을 해준다면 기아로서는 좋은 전력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돌아온 심동섭 역시 4구가 하나 나오기는 했지만 기대했던 투구를 보여주기 시작했다.
한승혁의 자멸로 인해 기아로서는 당장 다음 선발에 누구를 내세워야 할지 고민이 커질 수밖에 없게 되었다. 다시 한승혁을 선발로 내세울지 아니면 다른 선택지를 마련할지 알 수 없지만, 선발 야구를 하던 기아가 아킬레스건이 선발이 되었다는 점도 힘들게 한다. 하루 동안 지켰던 5할 승부도 무너졌다. 목요일 경기에서 팻딘은 스토퍼가 되고 로저스를 무너트릴 수 있을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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