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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구

[2R]도로공사 페퍼저축은행 3-1승, 승패 상관없이 최선을 다한 경기였다

by 스포토리 2021. 11.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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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승부란 존재하지 않은 배구에서 어떻게든 승패는 가려질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절대적으로 약한 페퍼저축이 도로공사에 맞서 승리하는 것은 쉽지 않다. 물론 배구란 여러 요소들이 존재하고 한번 바람을 타고 올라가면 객관적 전력과 상관없이 승패가 갈리기도 한다.

 

신생팀인 페퍼저축에 많은 팬들이 자발적으로 생겨나는 것은 그들이 보여주는 도전 정신이다. 최근 기업은행의 기괴한 만행들이 만천하에 드러나며, 배구계 전체가 경악하는 상황에서 페퍼저축이 보여주는 그 열정은 배구의 본질을 생각나게 한다는 점에서 반갑기만 하다.

페퍼저축은 내년 시즌에나 참여하는 것이 맞았다. 5개월 연습을 하고 리그에 뛰어드는 것은 문제가 많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더욱 선수 수급이 중요한데, 컵대회에 나갈 수도 없을 정도로 부족한 선수에 겨우 신인을 받아 팀 구성을 마쳤다는 점에서 기본적으로 이는 리그 경기에 나서는 것 자체가 무리였다.

 

실제 많은 팬들은 페퍼저축이 돈도 쓰지 않는다며 질책했다. 선수를 모으는 것이 어려웠기 때문이다. 물론 이름 있고 실력이 뛰어난 선수들을 데려올 수도 없다. 신생팀이 그 정도 이름값을 가진 선수가 오기도 어렵다. 그런 점에서 KOVO에서도 내년 신인 드래프트까지 모두 모아서 다음 시즌 출전을 권유할 정도였다.

 

비교 자체가 안 될 정도로 열악한 상황에서 시즌을 시작했지만 페퍼저축은 자신들이 왜 올 시즌 굴욕적인 경기들을 할 수밖에 없음에도 나왔는지 잘 보여주었다. 배구란 무엇인지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노련하고 대단한 경기를 하는 것 역시 배구의 한 부분이겠지만, 열정과 패기가 주는 매력은 상상을 초월한다.

 

그런 패기는 밋밋해질 수도 있는 여자 배구를 흥겹게 만들고 있다. 일방적으로 승점 주는 팀 정도로 취급받았지만, 시는 첫 경기에서 첫 세트를 얻으며 모두를 놀라게 한 페퍼저축은 시즌 후 11연승을 이어가는 현대건설을 가장 힘겹게 만든 팀이기도 했다.

 

역사 속으로 사라져야 할 기업은행을 상대로 첫 승까지 올리며 그들의 열정이 곧 여자배구의 가장 소중한 자산임을 일깨웠다는 점에서 많은 팬들의 박수를 받았다. 하지만 그 첫 승이 독이 되는 것도 당연했다. 첫 승을 위해 달렸던 그들은 목표에 도달하며 잠시 혼란스러운 모습을 보였다. 

 

위기에서 벗어나 다시 처음 시작처럼 일어서는 그들의 모든 과정들이 성장이라는 큰 틀에서 움직이고 있다는 점에서 반가웠다. 김형실 감독이 반복적으로 처음부터 와 기본을 언급하며 경험이 부족한 선수들을 다독이고 집중하도록 하는 모습 역시 보기 좋았다.

 

이런 희망을 페퍼저축은 1세트에서 잘 보여주었다. 최근 연승을 거두며 좋은 흐름을 가져가던 도로공사를 상대로 분위기를 빼앗으며 기선제압에 성공했기 때문이다. 첫 득점은 엘리자벳의 몫이었고, 서브 에이스까지 나오며 초반 분위기를 페퍼저축이 가져갔다.

 

페퍼저축은 1세트에서 완벽한 수비를 보여주며 도로공사를 당황하게 만들었다. 공격을 해도 뚫리지 않으면 불안해질 수밖에 없다. 여기에 엘리자벳의 파괴력 높은 공격에, 이한비와 박경현도 살아나며 안정적인 경기를 치를 수 있었다.

 

1세트 페퍼저축의 경기력은 그들이 지향해야 할 모습이었다. 김 감독은 매 연습마다 수비에 집중한다고 밝혔다. 어떤 때는 수비만 하다 연습이 끝날 때도 있다고 할 정도다. 그만큼 기본에 충실한 성장을 이룰 수 있기를 바란다는 의미다. 

도로공사가 정말 강한 팀이라는 것은 1세트 문제를 바로 확인하고 방어에 나섰다는 것이다. 페퍼저축 선수들과 비교가 될 수 없을 정도로 노련한 선수들이 대거 포진한 도로공사는 자신들이 무엇이 부족했고, 상대를 어떻게 공략해야 하는지 즉석에서 바로 확인이 가능하다는 것이 장점이다. 

 

큰언니 정대영의 블로킹이 시작되고, 서브와 공격까지 이어지는 상황에서 다른 선수들 역시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며 페퍼저축을 압도해나갔다. 박정아가 2세트부터 선발에서 빠진 상황에서 전새얀의 그동안 부진을 잘 벗어났다. 

 

문정원 대신 이예림이 전새얀과 함께 선발로 나서며 분위기 반전에 성공했다. 교체된 선수들이 폭발하며 승리를 이끌면 팀 전체가 살아날 수 있었다. 전새얀과 이예림이 팀 전체 분위기를 살렸다는 점에서 이 교체는 팀 전체를 바꿨다.

 

안정적인 모습을 보였던 페퍼저축은 도로공사의 반격에 급격하게 흔들리며 2세트를 너무 쉽게 무너지고 말았다. 25-15로 내준 것은 너무 아쉬웠다. 보다 치고 올라가며 괴롭혔어야 하지만 페퍼저축이 노련하지 못한 상황은 아쉬움을 다가왔다.

3세트 역시 도로공사가 경기를 손쉽게 리드했다. 켈시가 공격이 풀리기 시작하며 경기를 더욱 손쉽게 흘러갈 수밖에 없었다. 공격이 잘되던 이한비의 공격을 이예림이 블로킹하며 흐름을 지속적으로 도로공사로 이끌었다는 사실은 경험과 집중력의 차이였다.

 

3세트는 이예림이 5득점을 하며 도로공사가 세트를 가져갈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 첫 세트를 따내고 허무하게 두 세트를 내준 페퍼저축은 4세트 다시 상대를 압박하는 모습들을 보여주었다. 재미있게도 양 팀의 선수들이 누구 하나에 집중되지 않고 고른 활약을 했다는 사실이 반가웠다.

 

25-23이라는 결과가 말해주듯 양팀은 치열했다. 4세트에서 끝내야 하는 도로공사와 5세트까지 가져가려는 페퍼저축은 그렇게 치열했다. 엘리자벳과 켈시의 타점 높은 공격이 성공되고, 그들의 공격을 블로킹하며 짜릿함을 받는 장면들 모두가 배구가 주는 매력이었다.

 

23-23 상황에서 전새얀의 리시브가 길게 들어오며 문제가 생긴 상황에서 이윤정 세터가 몸을 비틀며 빈곳에 밀어 넣으며 점수를 만드는 과정은 결정적이었다. 엘리자벳의 후위 공격을 리시브가 되자 켈시가 마무리를 하며 4세트도 도로공사가 가져갔다.

페퍼저축으로서는 아쉬움이 컸다. 공격 엇박자가 많이 났기 때문이다. 이한비가 터지는 상황에서 엘리자벳도 함께 터졌다면 상대를 손쉽게 제압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한비가 터지면 엘리자벳이 침묵하는 등 오늘 경기에서 공격의 아쉬움은 승패로 드러났다.

 

엘리자벳으로서는 외국인 선수의 몫 이상을 해야 하는 위치다. 선수들을 추스르고 경기에 활력을 넣어줘야 한다. 그리고 중요한 상황에서 공격을 도맡아야 한다는 점에서 체력적 문제도 크게 다가온다. 여기에 노련한 세터가 있는 팀이 아니라는 것은 공격하기 좋은 토스보다 아쉬운 것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페퍼저축은 여전히 집중력이 경기중 떨어지는 상황이 많이 보인다. 체력적인 문제도 드러나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보다 관리가 필요한 상황들이 되고 있다. 선수층까지 얇은 상황에서 노련함을 갖춰야 하는 것도 페퍼저축의 과제이기도 하다.

 

도로공사는 실업팀에서 온 이윤정과 이예림이 오늘 경기를 지배했다. 이윤정 세터는 세 경기모두 선발로 나서면 팀 연승을 이끌었다. 이는 중요하다. 주전 세터인 이고은을 밀어내고 이윤정이 차지하고 팀을 이끌고 있다는 것은 실업팀 선수에 대한 기대치를 높인다.

 

이예림 역시 주포인 박정아가 빠진 상황에서 공백을 느끼지 못하게 좋은 공격을 보여줬다는 것도 중요하다. 공격만이 아니라 수비에도 적극적인 이예림의 모습을 보면 선수 부족을 탓하기보다, 실업팀의 능력 있고, 열정 있는 선수들을 발굴해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하다. 어설프게 기고만장한 선수들보다 실업팀에서 배구의 소중함을 아는 선수들이 배구 발전에 더 이롭다는 것을 잘 보여준 경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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