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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 Baseball/한국 프로야구

한국프로야구 올스타전 MVP 영광은 박병호, 감동은 박찬호의 은퇴식

by 스포토리 2014. 7.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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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병호가 홈런 두 방으로 2014 올스타전에서 미스터 올스타로 선정되었습니다. 비가 내리는 상황에서도 화끈한 타격쇼를 보인 웨스턴 리그와 속수무책으로 무너진 이스턴 리그의 타격과 마운드의 힘 차이가 극명하게 드러난 경기였습니다. 별들의 전쟁에서 가장 화려하게 빛났던 것은 박병호가 아니라 공식 은퇴식을 가진 박찬호였습니다.

 

개척자 박찬호, 그의 위대한 업적이 현재의 한국프로야구를 만들었다

 

 

 

 

1994년 LA 다저스에서 데뷔를 한 박찬호는 2010년 아시아 투수 최고승수인 124승을 기록하고 메이저리그를 내려왔습니다. 누구나 갈 수는 있지만 정상에 설 수는 없었던 무대 메이저리그. 그곳에서 대학생이었던 박찬호는 힘겹게 올라섰고, 그곳에서 IMF로 무너진 국민들에게 희망을 심어주기도 했었습니다.

 

 

패망한 일본의 영웅이 되었던 역도산처럼 IMF로 나라가 망한다는 어수선한 절망 속에서 박찬호는 국민들에게 하면 된다는 희망을 담아주었습니다. 그동안 우리가 볼 수 없었던 개척자 정신으로 낯선 나라에서 대한민국을 널리 알린 박찬호는 그런 존재였습니다.

 

한국프로야구의 살아있는 전설인 박철순이 마이너리거로서 활약을 했다는 것을 제외하면 한국인 투수로서 메이저리그를 호령한 첫 번째 선수라는 점에서 박찬호는 위대할 수밖에 없습니다. 박철순이 한국프로야구를 위해 귀국하지 않았다면 메이저리그 입성도 가능했겠지만, 이는 그저 결과론에 대한 이야기일 뿐 현실은 아니었습니다.

 

그저 공만 빠르다고 평가받던 박찬호는 동급생 스타들 중에서도 크게 주목을 받지 못하던 선수였습니다. 하지만 그는 메이저에 입성한 투수가 되었고, 마이너를 거치지 않고 곧바로 메이저에 입성하는 쾌거도 만들어냈습니다. 물론 실력의 한계를 절감하고 마이너에서 눈물에 젖은 빵을 먹어야 했지만 말입니다.

 

박찬호가 위대하게 평가되는 것은 그가 활약하던 시절이 금지약물로 무장한 괴물 타자들이 득세하던 시절이었기 때문입니다. 현재 드러나고 있는 금지약물 논란의 주인공들이 모두 박찬호와 함께 활동하던 선수들이라는 점에서 그의 활약은 그만큼 더욱 위대하게 다가옵니다. 160km에 근접하는 빠른 공을 주무기로 상대를 제압하던 박찬호는 분명 전설입니다. 지독한 사회적 불안 속에서 힘겨워하던 국민들에게 거대한 산과 같은 상대 선수들을 추풍낙엽처럼 만드는 박찬호의 강력한 힘에 매료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현실의 힘겨움을 먼 타국에서 울리는 승전보에 환호할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박찬호는 영웅이었습니다. 1994년 입단해 1996년 5승5패를 기록하며 본격적인 가능성을 보인 박찬호의 성공시대는 1997년부터 시작되었습니다. 박찬호는 1997년 14승을 시작으로 1998년 15승, 1999년 13승, 2000년 18승, 2001년 15승 등 5년 연속 두 자리 승수를 기록하며 다저스의 실질적인 에이스 역할을 해주었습니다.

 

5년 동안 박찬호는 75승이라는 엄청난 승수를 기록했습니다. 당대 최고의 우완 투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박찬호의 호투는 그저 한국인이라는 자부심만이 아니라 콧대 높은 미국인들에게 강렬하게 각인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올스타전에 뽑히기도 했던(올스타전에서 칼 립캔 주니어의 고별 홈런을 내준) 그는 진정한 메이저리그 최고 투수 중 하나였습니다.

 

최고 성적을 바탕으로 엄청난 금액으로 텍사스로 이적을 하지만, 부상 여파는 박찬호의 발목을 잡았고 그는 최악의 시즌을 보내야만 했습니다. 최고의 선수에서 최악의 먹튀 선수로 전락한 박찬호의 고통이 얼마나 심했는지에 대해서는 그의 회고에서도 충분히 알 수 있었습니다.

 

 

박찬호는 메이저리그 통산 124승 98패, 4.36 평균자책점, 287번의 선발에서 10번의 완투와 3번의 완봉, 1993이닝을 메이저리그에서 소화한 박찬호는 1715개의 탈삼진을 기록하고 그 위대한 산에서 내려왔습니다. 재일교포의 아내가 살던 일본에서 한 해 머문 그는 고향 팀인 한화에서 선수로서 마지막 한 해를 보냈습니다. 위대한 전설은 그렇게 고향 팀 후배들에게 자신이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전수했습니다.

 

메이저리거가 되고 싶었던 류현진에게 박찬호와의 1년은 그 무엇보다 소중한 경험이었을 듯합니다. 현재 엄청난 기세로 박찬호의 기록을 경신할 유력한 후보로 거론되는 류현진. 전설과 함께 했던 1년은 류현진이 메이저리그를 좀 더 현실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을 것입니다. 그 위대한 전설을 위해 우리는 늦었지만 2014 올스타전에서 은퇴식을 마련했습니다.

 

미국에서 은퇴 경기를 했어야 했던 박찬호, 고국에서도 제대로 대접을 받지 못했던 그는 늦었지만 모든 야구팬들이 지켜보는 올스타전에서 후배들의 환호를 받으며 화려한 은퇴식을 가졌습니다. 공주고 선배였던 김경문 NC 감독이 포수로 나서 그 위대한 마지막 투구를 했습니다.

 

 

한화 유니폼을 입고 마운드에서 서서 선배를 향해 공을 던지고 뜨거운 포옹을 하던 박찬호의 모습은 감동이었습니다. 경기에서 화끈한 타격쇼를 이끌며 위대한 선수로 다시 한 번 각인된 박병호가 미스터 올스타가 되며 모든 영광을 가져갔지만, 오늘 올스타전의 진정한 스타는 박찬호였습니다.

 

한화 후배들이 정성껏 만든 선물들을 보며 아이처럼 좋아하며 감격해하는 박찬호. 어린 두 딸과 부인 앞에서 소회를 밝히며 뜨거운 눈물을 흘리던 그의 모습은 영원히 잊혀지지 않을 듯합니다. 가장 위대했던 야구 영웅은 그렇게 시간이 흐르며 소외받아왔습니다. 뒤늦게라도 그를 위한 화려한 은퇴식이 준비되고 그의 마지막을 모두가 축하해줄 수 있도록 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감동스러웠던 순간이었습니다.


강정호를 시작으로 모창민, 박병호, 나지완, 칸투로 이어진 별들의 화끈한 홈런 쇼는 많은 팬들에게 시원함을 안겨주었습니다. 화끈한 타격만큼 화려한 수비로 올스타전 특유의 재미까지 담아주었던 2014 올스타전은 분명 흥미로운 경기였습니다. 일방적으로 웨스턴 리그의 압승으로 끝나기는 했지만, 올스타전 특유의 재미를 보여줬다는 점에서 만족스러웠습니다.

 

 

올스타들의 화려한 모습들 속에서도 뒤지지 않은 전설의 등장은 여전히 큰 잔상으로 남아있습니다. 누구도 가보지 못했던 곳을 개척하고, 그곳에서 최고의 존재로 우뚝 섰던 위대한 영웅 박찬호. 그는 야구를 위해 태어났고, 야구를 위해 살아왔습니다. 마지막 은퇴식을 하면서도 박찬호는 다시 마운드에 서는 꿈을 꾸고 있었습니다. 그는 진정 야구를 위한 사나이였고, 우리에게는 영원히 잊혀 질 수 없는 야구 영웅 박찬호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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