헥터는 오늘 경기도 그리 만족스럽지 못했다. 물론 6이닝 3실점을 하며 퀄리티 스타트를 했지만 불안했다는 점이 문제다. 에이스는 불안감을 팀원들에게 줘서는 안 된다. 그런 점에서 헥터의 아쉬운 투구가 일시적이지 않을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지난 시즌 하반기부터 그런 우려가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 문제다.
사인 훔친 엘지의 비도덕적 행위, 김민식 결승타로 연승 이끌었다
기아가 2연승을 한 것은 다행이지만 팀 주축 멤버인 안치홍이 부상으로 이탈한 것은 큰 타격이 아닐 수 없다. 엘지 선발 윌슨의 몸쪽 가득 붙인 강속구가 손가락에 맞으며 부상으로 이어졌다. 실금까지 간 상태에서 안치홍이 언제 복귀할 수 있을지 명확하지도 않다.
기아는 헥터가 선발로 나섰지만 1회부터 불안했다. 선두타자에게 안타를 맞고, 포수 실책까지 이어지며 1회부터 어수선했다. 주자 두 명을 내보낸 뒤 엘지 3, 4번 타자들을 낮은 외야 플라이로 잘 잡아냈지만 채은성을 볼넷으로 내보낸 것이 화근이 되었다.
2사 만루 상황에서 최근 타격감이 좋은 유강남에게 2타점 2루타를 내주고 말았다. 실투를 놓치지 않은 유강남으로 인해 0-2로 쫓긴 기아는 2회 반격에 나서며 역전에 성공했다. 선두 타자인 최형우가 안타로 나갔지만 김주찬은 삼진 최원준은 3루 땅볼로 물러나며 득점에 실패하는 듯했다.
2사 상황에서 윌슨의 이중 모션으로 최형우가 2루로 진루하고, 나지완이 적시타로 점수를 얻었다. 나지완이 이 안타는 무려 16타석 만에 나온 것이었다. 김주찬이 전날 20타석 만에 안타를 쳤던 것과 같았다. 기아 타자들이 조금씩 깊은 슬럼프에서 벗어나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김민식이 4구를 얻어나간 후 김선빈이 역전 2루타를 치며 기아는 엘지에게 3-2로 앞서 나갔다. 양 팀이 다시 균형을 맞춘 것은 6회였다. 선두 타자 오지환에게 안타를 내주기는 했지만, 양석환과 강승호를 내야 땅볼로 잡아내며 이닝이 잘 끝나는 듯했다.
문제는 다시 4구였다. 1회 실점 과정에서도 4구가 결정적 이유가 되었듯, 6회 실점도 4구가 나온 후 임훈의 타격에서 김민식이 공을 뒤로 흘리며 동점을 내주고 말았다. 헛스윙 과정에서 포수 미트에 맞고 흐른 타구는 다시 봐도 안타깝기만 한 상황이었다.
헥터는 6이닝 동안 97개의 투구수로 9피안타, 2사사구, 1탈삼진, 3실점, 무자책 경기를 했다. 분명 전 경기에서 2이닝 7실점을 했던 모습과 비교해 보면 좋은 피칭이었다. 하지만 20승 투수인 헥터로 비교해보면 아쉬운 경기였다. 수비 실책들이 이어지며 실점을 했다는 점에서 헥터가 호투를 하기는 했지만, 여전히 불안을 씻어내지는 못한 경기였다.
팽팽한 경기는 8회 기아의 역전으로 마무리되었다. 선두 타자인 김주찬이 사구를 얻어낸 후 1사 1루 상황에서 엘지는 오늘 3안타를 친 나지완을 고의 4구로 진루시켰다. 하지만 이게 화근이었다. 오늘 경기에서 실점이 나오기 직전 4구가 있었다는 점에서 8회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두 번의 실책이 모두 실점으로 연결되었던 최악의 경기를 보인 김민식은 이를 만회하기라도 하듯 적시타로 역전에 성공시켰다. 이어진 기회를 김선빈과 정성훈이 해결해주지 못한 것이 아쉬웠지만, 역전을 시켰다는 것이 중요했다. 그리고 두 번 연속 블론 세이브를 한 김세현을 다시 마무리로 내세운 기아는 힘겹게 엘지를 상대로 2연승을 거뒀다.
두 경기 모두 타이트했다는 점에서 기아로서는 보다 큰 힘을 얻을 수 있을 듯하다. 여전히 타선이 완전히 살아났다고 할 수는 없다. 어제 맹타를 쳤던 김주찬이 오늘은 침묵했듯, 타자들은 아직 불안하다. 하지만 선발 헥터가 이번에는 제 역할을 해주었다.
1과 1/3이닝을 무실점으로 막은 박정수의 역할은 컸다. 동점 상황에서 점수를 내주면 그대로 밀릴 수밖에 없는 경기에서 박정수는 강력한 공으로 상대 타선을 효과적으로 막아줬다. 타선의 부침은 시간이 해결해줄 수밖에 없다. 김선빈이 타격감이 올라왔고, 나지완이 3안타 경기를 하며 가능성을 보였다는 점도 기아로서는 반가운 일이다.
경기가 끝난 후 엘지 벤치에서 이상한 것이 발견되었다. 기아의 사인을 정리한 것을 붙여 놓고 경기를 했던 것이 발각되었다. 그동안 사인을 훔치는 행위들은 많이 있어왔다. 하지만 이렇게 노골적으로 사인을 훔쳐 종이에 적어 붙여 놓고 경기를 한 적은 없다.
당당하게 상대 사인을 훔쳐 경기를 치른 엘지의 행태는 황당하기만 하다. 전력 분석 차원의 일이었다면 단장과 감독은 모르는 일이라는 말 자체가 황당하다. 벤치는 감독의 영역이다. 그 공간에 감독 몰래 전력 분석관이 상대 팀 사인을 훔쳐 정리한 내용을 붙여 선수들과 공유한다는 것이 말이 안된다.
단장의 지시가 있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감독 역시 이 사실을 충분히 알았을 것이다. 몰랐다면 무능한 일이다. 그런 점에서 엘지의 이 행태는 KBO 차원에서 조사를 해야 한다. 프로야구 사상 처음으로 이런 노골적인 사인 훔치기는 처음이라는 점에서 강력한 조처가 절실하다.
19일 경기는 양 팀 좌완 에이스의 맞대결이다. 차우찬과 양현종이 올 시즌 두 번째 맞대결을 한다. 첫 경기에서 차우찬은 프로 데뷔 후 처음으로 양현종을 이겼다. 양현종은 자존심 만회를 위해 최선을 다할 것으로 보인다. 사인 훔치기로 야구를 한 엘지로서는 이 사실이 드러난 후 어떤 모습을 보일지도 궁금하다.
안치홍까지 부상으로 이탈한 기아는 타선의 어려움이 이어질 수밖에 없다. 이범호와 안치홍이라는 거포들이 빠진 상태는 큰 아쉬움이다. 더욱 안치홍은 올 시즌 초반부터 엄청난 파괴력을 보여주고 있었다는 점에서 아쉬움은 더욱 커진다.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이겨내야 한다. 우승 전력은 주전들이 빠진 상태에서 승리가 증명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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