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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 Baseball/한국 프로야구

불멸의 투수 최동원, 우린 '최동원'이라 쓰고 '야구'라고 기억한다

by 스포토리 2011. 11.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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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더 이상 그를 볼 수 없지만 야구가 지구상에서 사라지지 않는 한 그의 이름은 영원히 기억될 수밖에는 없습니다. 불멸의 영웅 최동원. 그가 있었기에 현재의 한국 프로야구가 있을 수 있었다는 그 평범한 진리를 우린 그가 떠나고 난 뒤에야 깨닫게 되었습니다. MBC 스페셜을 통해 다시 보게 된 그의 모습은 그래서 더욱 마음이 아팠었나 봅니다.

우리가 최동원을 기억해야 하는 것은 단순히 기록은 아니었다




현대 야구의 모든 것이라 부를 수 있는 존재감. 그 존재감의 끝에는 최동원이라는 인물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그의 마지막 꿈이자 숙원이었던 감독의 자리에 올라서지 못한 것은 그만이 아니라 그를 사랑하고 기억하는 모든 이들의 아픔으로 남을 수밖에는 없습니다. 하지만 그가 있어서 행복했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 진리일 것입니다. 

2000년 대 야구만을 기억하고 봐왔던 이들에게 최동원이라는 이름은 그저 기록 속에 존재하는 전설이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보다 오래 전부터 야구를 봤던 이들에게 최동원은 곧 야구 그 자체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엄청난 스피드만이 아니라 마운드 위에서 세상을 호령하던 그의 모습은 그 자체가 최고일 수밖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84년 한국 시리즈에서 삼성과 맞붙어 혼자 4승을 따낸 전설적인 이야기는 정말 전설일 수밖에 없습니다. 만화에서도 등장할 법한 그의 호투는 전무후무한 기록으로 남겨졌습니다. 5. 6, 7차전을 연속으로 던지며 7차전을 마감하며 홀로 다섯 경기를 등판한 최동원은 그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역사를 만들어낸 존재입니다. 

11일 방송된 <MBC 스페셜 불멸의 투수 최동원>은 야구를 좋아하는 이들이라면 아니, 야구를 좋아하지 않는 이들에게도 특별한 의미로 다가온 방송이었습니다. 이젠 가슴에 묻어야 하는 전설이지만 그가 살아왔던 삶을 돌아보며 그가 남긴 흔적들이 우리에게 얼마나 대단함으로 남겨져 있는지 새삼 깨닫게 했습니다. 

그를 잘 알지 못했던 이들에게 이 방송은 전부는 아니지만 좀 더 자세하게 최동원이라는 인물을 바라볼 수 있도록 해주었을 듯합니다. 전설과도 같았던 한국 시리즈 4승이나 선동열과 대결을 벌였던 15이닝 완투 무승부 등 한국 프로야구의 영원한 전설과도 같은 이야기들은 야구팬들이라면 다시 한 번 가슴이 뛰게 만드는 장면들이었습니다. 

야구를 시작하며 가족들이 보인 헌신 등도 흥미롭게 다가왔습니다. 집에 최동원을 위한 연습 장소를 만들고 일본 야구를 보면서 이를 세밀하게 최동원에게 지도했다는 아버지. 다리 하나가 의족임에도 스스로 대리인을 자처하며 아들이 야구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했던 것은 지금 생각해보면 대단했습니다. 당시 많은 이들을 그런 최동원을 '파파보이'라고 부르기도 했지만 전문화가 떨어진 그 시절 전문적으로 선수를 대신하는 매니지먼트를 했다는 사실은 놀라운 일이지요. 투수인 아들의 잠자리를 위해 어깨 부위의 이불솜까지 세밀하게 관리할 정도로 최동원 아버지의 노력들 역시 그가 전설이 될 수 있게 만든 주역임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불멸의 스타인 최동원이 자신의 고향 팀인 롯데를 떠나 삼성으로 가야만 했던 사실은 그에게는 아픔이었습니다. 프로로서 가치가 명확하게 정립되지 않은 상황에서 구단의 일방적인 주장에 휩쓸려 다녀야만 했던 시절 그는 선수협을 구성해 재벌들과 맞서 싸웠습니다. 

선수들의 권리를 주장하는 그의 모습이 재벌들의 모습에 어떻게 보였을지는 안 봐도 충분히 예측 가능합니다. 선수들의 최저임금을 보장하고 노력한 만큼 연봉을 받을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는 최동원의 주장은, 그가 선수시절에는 누리지 못했지만 현재의 프로야구 선수들은 모두 누리고 있다는 점에서 그의 존재감은 더욱 크게 다가옵니다.

최근 선수협 비리와 관련된 이야기를 들으면 하늘에서 최동원 선수가 어떻게 바라볼까요? 수신도 안 되는 존재가 낄 데 안 낄 데 구분하지 못하고 나서서 선수협의 비리를 꼬집는 어불성설이 씁쓸한 상황에서 진정 선수를 위한 선수협으로 다시 설 수 있기를 바라게 됩니다.  

강력한 롯데 구단과 맞서 자신의 투쟁을 꺾지 않았던 최동원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일방적으로 트레이드 되는 아픔을 겪어야만 했습니다. 삼성으로 간 그는 우리가 알고 있는 최동원은 더 이상 아니었습니다. 과거의 화려했던 영광을 뒤로하고 쓸쓸하게 퇴장을 해야만 했던 최동원 선수.

일방적인 트레이드를 당한 후 최동원이 처음 사직 구장을 찾았을 때를 기억하고 있는 팬은 회고합니다.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쳤던 사직 구장에 롯데 유니폼이 아닌 다른 구단 유니폼을 입고 와야만 했던 최동원. 자신을 따뜻하게 맞이해주는 팬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하고 뒤돌아 안경을 벗고 눈물을 훔쳐야만 했던 그는 영원한 부산 야구의 상징이었습니다. 

야구 하나가 좋아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 야구만 했던 최동원 선수. 병역 문제로 인해 한국인 최초 메이저리거가 될 수도 있었던 기회마저 놓쳐야 했던 전설의 선수. 현재 한국 프로야구의 기틀을 마련해준 행동하는 양심 최동원. 절대적인 존재였던 구단과 맞서 싸우며 선수협을 만들려 했던 존재. 그의 그런 노력들이 있었기에 600만이 넘는 관중을 모으는 최고 인기 스포츠가 되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쉬운 길이 아닌, 힘들지만 자신의 소신을 잃지 않았던 그의 마지막 꿈은 고향 팀에서 감독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죽어서 자신의 상징인 11번을 세기기는 했지만 살아생전에 사직 구장으로 갈 수는 없었습니다. 그토록 원했던 지도자의 길을 걷고 싶었던 그가 부산이 아닌, 대전에서 코치 생활을 해야만 했는지 우린 모두 알고 있습니다. 이번에는 이대호마저 최동원처럼 몰아내려 나 봅니다. 당시와 상황은 다르지만 부산 야구, 아니 한국 야구의 상징인 이대호에게 굴욕을 주면서도 자신들의 입장만 관철시키려는 롯데 구단으로 인해 어쩌면 그를 더 이상 국내에서는 볼 수 없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뛰어난 야구 실력을 갖춘 선수들과 전 세계에 내놔도 부족함이 없는 응원 문화를 가진 부산. 하지만 그 중심에 있는 롯데라는 구단은 선수나 팬들과 비교해보면 턱없이 부족한 인식을 갖춘 존재들입니다. 만약 롯데가 아닌 다른 기업이 부산 야구를 책임졌다면, 부산은 현재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전설의 팀으로 군림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합니다.

병마와 싸우며 몰라보게 변한 모습으로 마주한 마지막 인터뷰에서도 그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야구만 생각하던 천상 야구인이었습니다. 그가 그토록 가지고 싶었던 감독이라는 꿈을 가지지 못하고 하늘의 별이 되어버렸지만, 그는 영원히 그를 기억하는 팬들에게 위대한 선수이고 현재와 미래의 야구를 지도하는 영원한 스승일 것입니다. 북극성이 길을 안내하는 기준이 되듯 야구팬들과 선수들에게 최동원은 그런 존재로 영원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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