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실을 가득 채운 관객들의 함성이 장관이었던 기아와 LG 경기는 흥미로웠다. 1선발 대결이라는 점과 두 선수 모두 개막전 승리를 거두지 못했다는 점에서도 기대가 컸다. 자존심을 건 한 판 승부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전통적으로 열성팬들이 많은 기아와 LG의 대결은 그 자체로 재미있다.
엇갈렸던 헥터와 윌슨의 호투, 위기를 넘긴 기아와 기회 놓친 LG
기아와 LG가 시즌 첫 경기를 잠실 3연전을 시작했다. 열성 팬들이 많은 양 팀의 경기는 당연히 잠실을 가득 채운 팬들과 함께 했다. 1선발 투수들의 대결이라는 점과 얼마 전까지 LG의 대표 선수였던 정성훈이 기아 유니폼을 입고 잠실에 선다는 것도 호재로 다가왔다.
개막 경기에서도 잘 던지고도 패전 투수가 되었던 윌슨은 흥미로운 선수다. 빠른 공과 각이 큰 커브 등 좋은 투수로서 자질이 잘 드러났기 때문이다. 초반 기아 타자들은 윌슨 공략법을 찾기 힘겨워했다. 처음 상대하는 선수라는 점에서 낯설게 다가올 수밖에 없었다.
윌슨이 기아 타자들을 압도하는 것과 달리, 헥터는 1회부터 불안했다. 지난 시즌 기이하게도 LG와 단 한 번도 만나 적이 없던 헥터는 상대를 공략하는데 힘들어 했다. 개막 경기에서도 1선발다운 효과적인 투구를 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불안함이 커질 수밖에 없었다.
1회에만 20개 넘는 공을 던진 헥터는 3회가 끝난 뒤에는 70개를 넘어섰다. 이런 상황이라면 5회를 넘기기도 힘들 정도였다. 하지만 헥터는 헥터였다. 어떻게든 정해진 투구 수 내에서 자신의 책임을 다하는 모습이 오늘 경기에서도 잘 드러났기 때문이다.
헥터가 위태롭게 LG 타선과 상대하는 것과 달리, 윌슨은 3회까지 기아 타선을 압도했다. 하지만 4회 양 팀 첫 득점은 기아 몫이었다. 선두 타자로 나선 김주찬이 볼 넷을 얻어나간 후 최형우의 빗맞은 내야 땅볼에 3루까지 진루한 것은 대단한 센스였다.
2사 3루 상황에서 시즌 초반부터 좋은 타격감을 보여주고 있는 안치홍이 적시 2루타로 선취점이자 결승점을 올렸다. 윌슨이 좋은 투구를 했지만, 집중력이 좋은 기아 타선을 완전히 막기에는 쉽지 않았다. 선취점을 내준 후 곧바로 정성훈을 삼진으로 돌려 세운 윌슨은 좋은 투수다. 위기 뒤 곧바로 안정을 찾고 이닝을 마무리하는 것은 좋은 투수의 덕목이자 기준이니 말이다.
5회 기아는 기세를 이어갔다. 선두 타자로 나선 김민식이 2루타로 나가자, 초반 타격 부진에 빠졌던 김선빈이 자신의 얼굴 높이로 오는 공을 힘으로 밀어내 적시타를 만들어냈다. 이명기의 투수 앞 땅볼을 윌슨은 잡자마자 2루로 던져 김선빈을 잡아냈다.
유격수 방향으로 흐르는 땅볼이었다는 점에서 2루를 노리는 것은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하지만 빠른 판단으로 선두 타자를 잡는 윌슨은 분명 좋은 투수다. 하지만 이명기의 도루는 윌슨의 힘을 빼기에 충분했다. 든든해야 할 포수가 포구를 제대로 하지 못하고, 도루하는 주자를 잡지 못하면 힘든 일이니 말이다.
이 상황에서 버나디나의 적시타까지 터지며 3-0까지 달아났다. 계속된 위기 상황에서 윌슨은 최형우와 나지완을 땅볼로 잡으며 추가 실점을 하지 않았다. 6회에도 마운드에 오른 윌슨은 선두 타자인 안치홍에게 안타를 내줬지만, 후속 타자 세 명을 모두 삼진으로 돌려 세우며 자신의 몫을 마쳤다.
윌슨은 6이닝 동안 106개의 투구 수로 8 피안타, 2사사구, 9탈삼진, 3실점을 하며 다시 패전 투수가 되었다. 비록 패전가 되었지만 LG의 1선발로서 충분한 매력을 보여주었다. 초반 위기를 넘기며 호투를 하던 헥터도 위기는 찾아왔다. 6회 선두 타자인 박용택에서 2루타를 내주고 가르시아에게 적시타를 맞아 첫 실점을 했다.
채은성까지 2루타를 치며 무사 2, 3루 위기에 처한 헥터는 최악의 위기 상황이었다. 연속 3안타로 실점까지 했고, 무사에 안타 하나면 동점까지 내줄 수 있었다. 하지만 헥터는 노련했다. 대타 이천웅을 1루 땅볼로 잡아내고, 오지환을 빗맞은 내야 땅볼로 잡아냈지만, 김선빈의 실책으로 실점을 하며 다시 1, 3루 위기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3-2로 쫓기는 상황에서도 헥터는 유강남을 3루 땅볼로 유도하며 병살로 위기를 벗어났다. 대량 실점이 가능했던 이닝을 효과적으로 막아내는 힘. 그게 에이스의 몫이고 헥터의 모습이기도 했다. 헥터는 6이닝 동안 112개의 공으로 6피안타, 2사사구, 4탈삼진, 2실점으로 시즌 첫 승을 신고했다.
7회 마운드에 오른 임창용은 첫 타자를 사구로 내보내며 위기를 맞았다. 하지만 안익훈을 삼진으로 잡고, 포수 김민식의 멋진 송구로 2루 도루를 막으며 단번에 위기를 벗어났다. 기아와 엘지의 승부처는 바로 포수의 역할에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8회 마운드에 오른 김윤동은 만루 위기를 자초하며 1사 만루에서 오지환에게 밀어내기 볼넷을 내주며 다시 1점 차까지 쫓기게 되었다. 그나마 대타 임훈을 포수 파울 플라이로 잡은 것은 다행이었다. 오늘 경기 4개의 아웃 카운트가 남은 상황에서 기아 벤치는 마무리 김세현을 선택했다. 9회 안타 하나를 내주기는 했지만 효과적인 투구로 시즌 첫 세이브를 기록했다.
나지완이 급속하게 슬펌프에 빠지는 상황에서도 안치홍은 안정적이며 효과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다. 헥터는 아슬아슬하기는 했지만 역시 좋은 투수였다. 오늘 경기에서 포수 김민식은 돋보였다. 2개의 안타를 친 것도 대단하지만 좋은 포구와 도루자까지 만들어내며 완벽한 수비를 보여주었으니 말이다. 내일 경기는 양현종과 차우찬 좌완 에이스들의 맞대결이다. 주말 잠실벌에서 벌어지는 기아와 LG의 경기는 오늘 경기 이상으로 흥미로울 것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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