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과 구단 혹은 선수의 소통의 문제
실력이 없어서 지는 경우. 어쩔 수 없습니다. 열심히 해도 실력이 모자라 질 수 있는 게 스포츠 경기이기에 선수들이 최선을 다하고도 지는 경기에 팬들은 박수를 보내고 비난을 퍼붓지는 않습니다. 그렇기에 팬들이 '청문회'라는 명칭까지 써가며 분노하는 이유는 선수들에게서 찾을 수밖에는 없어 보입니다.
물론 선수들이 격하게 반론을 펼친 부분에서 그들이 어떤 입장이고 생각인지도 느낄 수 있습니다. 자신들도 지고 싶어서 지는 것은 아니라는 말 속에 자신들의 의지와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이 스포츠임을 알 수 있습니다. 두산과 함께 서울을 양분하고 있다고 해도 좋을 정도로 전통을 자랑하는 엘지로서는 간만에 맞이한 좋은 성적에 고무될 수밖에는 없었습니다.
포스트 시즌을 밟아본 게 언제인지 기억도 흐릿해질 정도로 가장 많은 열성 팬들을 거느리고 있으면서도 가을 잔치는 남의 잔치가 되어버린 상황에서 올 시즌 초반 엘지가 거둔 성적은 대단했습니다. 1위도 했었고 후반기 시작 시점까지 4위를 지키며 대반전을 기대했던 팬들에게 후반기 시작과 함께 보인 그들의 성적은 분노를 살만했지요.
전반기 후반으로 들어서며 주춤하기 시작했던 엘지의 성적은 지속적으로 추락해 롯데에게 4위를 빼앗긴 채 하염없는 추락만 이어가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 엘지를 사랑하는 팬들이 분노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할 것입니다. 그리고 변화를 요구하는 것 역시 이해할 수밖에 없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롯데가 전반기 최악의 시즌을 보내는 상황에서 팬들은 무관중 운동을 펼치며 선수와 감독, 구단을 독려했던 일도 있을 정도로 팬들의 외침은 이제는 일상이자 당연한 권리 주장으로 여겨지기도 합니다. 분명한 것은 프로야구는 야구단만 있어서 되는 것도 아니고 팬들만 존재한다고 성립되는 것은 아니라는 말입니다. 서로가 필요충분조건이 되기에 프로야구가 30년이라는 세월동안 사랑 받을 수밖에 없었다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입니다.
과거 초창기 프로야구에서 볼 수 있었던 살벌했던 추억은 지금은 전설이 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요. 원정 팀(특히 경상도와 전라도 팀의 대결 시)이 승리하면 팬들의 분노로 인해 경기 후 팬들이 모두 집으로 간 뒤에야 돌아갈 수 있었을 정도로 분위기가 무서웠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극단적인 상황으로는 구단 버스가 불이 나는 일들까지 있을 정도로 거짓말 조금 보태 죽을 각오로 원정길에 올라야 했던 시절을 겪어낸 프로야구입니다.
그런 시절에 비하면 현재의 모습은 180도 달라져 있지요. 그렇다고 팬들의 열정이 사라진 건 아닙니다. 그런 자신의 분노를 정부를 향해 표출하지 못하던 시절 야구 팀에 대해 모든 속풀이를 하던 시절과는 사뭇 다른 팬 문화로 발전되고 있는 게 현실입니다.
성숙된 팬 문화와 더불어 프로야구도 국내 프로 스포츠 중 상대가 없을 정도로 엄청난 관중 동원을 하고 있다는 사실은 자랑해도 좋은 정도입니다. 문제는 이렇게 프로야구에 대한 관심이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성적에 대한 압박은 커질 수밖에는 없지요.
자신이 응원하는 팀이 우승하기를 바라는 것은 모든 팬들의 염원이기에 한 경기 한 경기에 분노하고 기뻐하는 것은 어쩌면 팬들의 당연한 권리일 것입니다. 그런 분노와 응원을 들으며 프로 스포츠는 발전하는 것이기에 일상이 되어버린 상황들에 선수들과 코칭스태프들은 휩쓸려서는 안 됩니다.
이번 엘지 팬들과 선수들의 논란은 그런 자신들의 입장이 정확하게 정리되지 않고 소통의 창구가 빈약한 우리의 프로야구 현주소를 그대로 드러난 사건일 뿐입니다. 그저 홈페이지에 글 쓰는 공간 하나로 팬들과의 소통에 최선을 다했다고 표현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30년이나 된 프로야구라면 좀 더 성숙된 방식의 소통 통로를 만들어 서로 떨어질 수 없는 선수와 팬들 간의 관계를 돈독하게 만드는 노력도 필요하지는 않은지 고민해 봅니다. 대표성을 가진 팬클럽 대표들과 구단 측간의 정기적인 대화의 장을 만들거나 선수협회 소속의 선수들과 삼자 논의가 가능한 통로들을 만들어, 문제가 될 수 있는 사안들을 서로 소통할 수 있는 장이 만들어진다면 좋지 않을까란 생각을 해봅니다.
어떤 구단은 구단주가 감독에게 직접 지시를 해서 선수 교체를 단행하는 전근대적인 상황이 연출되고 있는데 앞선 소통의 방식은 요원한 일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재벌들에 의해 운영될 수밖에 없는 프로야구단의 현실을 비춰봤을 때 팬들과의 괴리감은 어쩔 수 없는 현실일 수밖에 없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팬들도 보다 주인의식을 가지고 직접적으로 이야기를 전하고 싶어 하지만 그 통로는 언제나 일방적이고 이런 상황을 타파하기 위해 선수들 앞에서 구호를 외치며 그들을 독려하는 팬들의 모습은 안쓰럽기도 합니다. 물론 그런 방법 밖에는 없었나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그렇게 해서라도 우리 팀이 다시 상위권으로 올라서기를 바라는 팬들의 마음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으니 말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선수들 역시 분명한 자기 입장이 있을 수밖에는 없습니다. 팬들이 보기에 대충하는 것 같기도 하고 실수하고 멋쩍어 웃는 모습도 보기 싫을 수는 있습니다. 자신들이 열심히 하지만 그 열심히 하는 모습이 왜곡되어 비춰질 수도 있는 것은 당연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자신들에게 직접적으로 문제를 제기하고 구호를 외치고 싸움을 거는 일부 팬들의 모습에 욱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들도 인간이기 때문에 말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문제는 중재자가 전혀 없었다는 사실입니다. 코칭스태프도 문제의 현장에서 그 어떤 발언도 하지 않았고 가장 중요한 구단 관계자가 현장을 중재해 팬들의 의견이 무엇이고 선수들의 의지는 무엇인지를 명확하게 전달해주는 역할을 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현장에 있었던 팬의 글을 보면 팬과 선수들만 존재할 뿐 구단 사람들은 전혀 등장하지 않는 다는 것이 문제의 핵심입니다. 선수는 경기 열심히 하고, 팬들은 응원만 열심히 하면 됩니다. 그 외의 것들은 구단 실무 진들이 다 알아서해야만 하는 문제이지요.
그럼에도 구단 실무 진들은 사라진 채 팬과 선수들이 대면하며 서로 얼굴을 붉히는 상황이 벌어졌다는 점에서 엘지 구단은 정상적으로 운영이 안 되는 구단임을 만천하에 알린 꼴이 되어버렸습니다. 팬들의 분노는 이미 다양한 경로로 전달이 되었고 선수들의 상황도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것이 구단 실무 진들일 텐데 이런 상황까지 만든 것도 문제이지만 문제가 발생한 상황에서 아무런 역할도 하지 못했다는 것은 무능하다는 증거일 뿐입니다.
구단 실무 진은 그저 선수단 운영만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야구장 운영을 통해 수익을 높이는 것만이 그들의 임무도 아닙니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팬들과 소통입니다. 적극적으로 팬들과 소통해 이를 적극적으로 반영하거나 선수단과의 실질적인 대화를 통해 팬들의 의견들이 전달될 수 있도록 하는 것 역시 구단의 임무일 것입니다.
이번 논쟁에서 팬이나 선수들은 모두 할 말을 했습니다. 팬들의 입장에서는 간만에 포스트 시즌에 나설 수 있는 상황에서 좀 더 열심히 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을 전달했습니다. 선수들로서는 자신들도 열심히 하고는 있지만 패배를 해서 안타깝다는 입장을 전달했습니다. 문제는 이런 자신들의 의견을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격하게 표출했다는 문제입니다. 구단 측에서 소통의 통로를 일원화하고 적극적으로 팬들의 의견들을 수렴하고 소통시키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었다면 이런 불미스러운 일들이 일어날 수도 없었을 것입니다.
엘지 팬들과 일부 선수들 간의 논쟁을 보면서 구단의 임무란 무엇인가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됩니다. 30살이 된 프로야구. 좀 더 전문적인 방식의 도입과 팬과 구단, 선수들이 하나 되어 소통되는 시스템이 절실해지고 있음을 이번 사태를 통해서도 다시 한 번 느끼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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