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에서 시작해 삼성에서 마무리한 최동원과 정반대였던 장효조
최동원과 장효조는 모두 한 시대를 풍미했던 야구 영웅들이었습니다. 한 명은 투수로서 다른 한 명은 타자로서 레전드가 되어버린 그들은 공교롭게도 한 주를 사이에 두고 유명을 달리하며 많은 야구팬들과 관계자에게 충격을 안겨주었습니다.
이제 지도자로서 자신들이 쌓아올렸던 기술들을 후배들에 나눠줄 수 있는 중요한 시점에 갑자기 찾아 온 병으로 인해 너무 빨리 가버린 그들은 그래서 아프고 슬프기만 합니다. 7일 타격의 신 장효조가 14일에는 마운드의 황제 최동원이 세상과 등을 졌습니다. 그렇게 우린 전설 둘을 허망하게 떠나보내야만 했습니다.
롯데 자이언츠의 프랜차이즈 스타 최동원을 기리기 위한 롯데의 영구결번 행사는 그래서 특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야구의 전설에 대한 예우는 최소한 이 정도는 해야 하지 않느냐는 기준을 제시한 행사는 많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여전히 국내에 도입되지 않고 있는 '야구의 전당'이 시행되어야 할 것입니다. 단순히 업적을 기리는 수준이 아니라 이를 기반으로 현역과 은퇴 선수들이 생활을 안정적으로 이어갈 수 있도록 기본적인 시스템들이 정비되고 시행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세상을 호령했던 두 영웅이 마치 거짓말처럼 암을 이기지 못하고 일주일 사이에 모두 세상을 떠났다는 것은 남겨진 이들에게는 충격을 넘어서는 아픔이었습니다. 전설과도 같은 한국 시리즈 4승을 올렸던 최동원 선수는 여전히 최고의 투수로 많은 이들에게 기억되고 있습니다.
그의 대단한 야구인생은 많은 이들에게 감동으로 다가왔고 영화로 만들어질 정도로 화려하기까지 했습니다. 그를 상징하는 또 다른 '11'번이라는 번호는 롯데에서는 영구결번이 되었고 그는 이제 고인이 되었지만 그가 사랑하고 아꼈던 롯데 자이언츠 마운드에 최동원을 상징하는 '11'번이라는 번호와 영원히 함께하게 되었습니다.
1984년 한국 시리즈 우승 당시 인터뷰를 시작으로 활약상이 담긴 추모 영상은 그를 기리기 위해 사직 구장을 찾은 많은 팬들을 숙연하게 만들었습니다. 롯데 임경완은 선수 대표로 나와 추모사를 낭독했고, 롯데 자이언츠 사장은 최동원 선수의 영구결번을 선포했습니다.
11번이 새겨진 유니폼이 그려진 깃발과 외야 펜스에 만들어진 영구결번 판은 야구를 보러오는 수많은 관중들에게 최동원이 여전히 살아 사직 구장에 머물고 있음을 보여주게 되었습니다. 롯데는 선배를 먼저 보내고 맞이한 '최동원의 날'에 멋진 승리로 보답하며 그 의미를 더해주었습니다.
2위 결정을 확정하기 위해 무엇보다 중요한 승부처였던 두산과의 경기에서 롯데는 초반 나온 6점을 잘 지키며 SK와의 싸움에서 밀리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1회 4득점을 하고 2회 3실점을 하자 선발인 사도스키를 일찍 마운드에 내려 버릴 정도로 승부에 강한 집착을 보였던 롯데로서는 오늘 경기는 절대 져서는 안 되는 중요한 경기였습니다.
마음속에 최동원 선수를 그리며 그라운드에서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쏟아내며 최선을 다한 롯데와 두산 선수들. 그들의 오늘 경기는 단순히 2011년 9월 30일 경기만은 아니었습니다. 이제는 진정 레전드가 되어버린 최동원 선수를 기리고 아쉬워하는 자리에서 가진 특별한 경기였으니 말입니다.
영웅에 대한 대우로서 만족할 수준은 아니지만 그를 잊지 않고 그에 대해 최선을 다한 롯데 구단에 감사를 드립니다. 아쉬운 것은 정규 시즌 1위까지 한 삼성은 장효조 선수에 대해 어떤 고민을 하고 있는 지입니다. 과연 장효조 선수에 대해 이렇게 보내는 것이 맞는 것인지 의구심이 들 뿐입니다.
삼성의 문제는 프랜차이즈 스타였던 장효조 선수에 대한 예우가 한없이 부족했다는 점입니다. 그의 분신과도 같았던 '10'번은 이미 양준혁을 기리는 영구결번이 되어 그에 대한 그 어떤 의미 부여도 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는 것은 그들이 장효조 선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었는지를 엿보게 하는 아쉬움입니다.
삼성 프랜차이즈 선수가 감독이 되어 우승까지 차지한 중요하고 역사적인 해에 그들은 정작 최고의 스타가 유명을 달리 했지만 아무것도 해주지 못하고 엄두도 내지 않고 있는 처량한 신세로 전락했습니다. 최고를 지향한다는 말은 하지만 정작 중요한 것들을 모두 잃어버린 그들에게 과연 무엇이 남겨질지 알 수 없지만 장효조 선수가 이런 대접을 받아야 하는 선수는 아닙니다.
삼성에서 시작해 롯데에서 선수 생활을 마무리했던 장효조와 롯데에서 시작해 삼성에서 마무리한 최동원. 무슨 운명의 장난이라도 하듯 일주일 사이에 유명을 달리한 이 전설들의 마지막은 최소한 같은 수준의 기념행사는 있었어야만 했습니다. 최동원 선수에 대한 롯데의 기념행사가 마음 한 켠을 뿌듯하게 만들면서 다른 한 편이 아려 오는 것은 장효조 선수에 대한 삼성의 태도 때문일 것입니다.
양준혁이 프랜차이즈 선수로 스스로도 자신의 몸속에는 '파란 피'가 흐른다고 말 할 정도로 삼성을 사랑했습니다. 삼성이 그를 내쳐 다른 팀을 전전하면서도 마지막은 삼성이어야 한다는 신념은 그를 다시 삼성 선수로 만들었고, 그는 전설을 써내려갔습니다. 그런 그의 번호가 영구결번이 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했습니다.
문제는 그 대단한 번호인 '10'번의 주인공은 양준혁만의 것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장효조의 번호를 물려받은 양준혁에게는 미안한 이야기지만 그 번호는 장효조 선수를 위해 이미 영구결번이 되었어야만 하는 번호였습니다. 하지만 삼성구단은 장효조 선수에 대한 최소한의 예우도 없었고 그렇게 삼성을 떠나 롯데에서 선수 생활을 마무리해야만 했던 장효조 선수에 대한 마지막은 최동원 선수로 인해 더욱 초라해 보이기까지 합니다.
이제 고인이 된 장효조 선수는 이런 대접을 받아야 하는 선수가 아닙니다. 대한민국 프로야구 역사를 써내려갔던 전설적인 타자에 대한 예우치고 너무 초라한 현실 속에서 최동원 선수에 대한 롯데의 의미 부여는 더욱 크게 다가오기만 합니다.
'최동원의 날' 행사를 보면서 자연스럽게 장효조 선수가 오버랩 되는 것은 자연스러웠을 듯합니다. 한 시대를 풍미해 이제 야구팬들 사이에 전설이 되어버린 그들이 이렇게 다른 대접을 받아야 하는지는 의아스럽기만 합니다. 600만 관중 시대를 넘어 700만 관중 시대를 기대하게 만드는 '프로야구'는 30살이 되었지만 여전히 미숙한 유아기에 머물고 있는 것은 아닌지 다시 생각해 봅니다.
한화의 송진우(21번), 장종훈(35번), 정민철(23번), 삼성의 이만수(22번), 양준혁(10번), 두산의 김영신(54번), 박철순(21번), KIA의 선동열(18번)과 LG의 김용수(41번)에 이어 프로야구 사상 10번째 영구 결번이 된 최동원(11번) 선수. 하지만 이 수많은 영웅들 사이에 장효조 선수가 함께 하지 못한다는 것은 아쉬움을 넘어 슬픈 일 일수밖에 없습니다.
최동원 선수를 마지막까지 잊지 않기 위해 영구결번 행사를 치르며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많이 떠올랐던 존재는 최동원 선수가 아닌 장효조 선수였습니다. 그는 비록 그가 최고의 팀으로 만들었던 삼성에게 아무것도 받지 못했지만 현재의 삼성을 만든 초석이었고 수많은 타자들에게 영감을 준 최고의 선수였습니다. 비록 그의 영구결번은 삼성 프런트의 무지함이 만든 결과일지 모르지만, 후배의 몫으로 돌아가 영원히 기릴 수 있는 상징마저 빼앗겼지만 야구팬들의 마음속에는 영원한 10번을 단 타격의 신 장효조로 남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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