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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 Baseball/한국 프로야구

기아, 김상진 12주년 검은 리본 달고 1위 차지할까?

by 스포토리 2011. 6.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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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6월 10일 위암으로 세상을 떠난 해태 타이거즈 투수 김상진을 기억하시나요? 1999년 22살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등진 김상진은 20살에 최연소 한국시리즈 완투승을 기록했던 짧았지만 화려하게 자신을 빛냈던 선수였습니다. 1년 이상 투병생활을 하다 끝내 마운드로 돌아오지 못하고 숨진 김상진 그가 떠난 지도 벌써 12년이 되었습니다.

검은 리본의 힘, 기아는 LG 꺽고 1위 차지할까?




해태가 기아로 이름이 바뀌기는 했지만 그들은 여전히 타이거즈라는 이름을 달고 경기를 하고 있습니다. 해태 타이거즈라는 이름으로 거둔 엄청난 성과에 비교하면 초라하지만 '호랑이'들은 다시 과거의 영광을 재현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파죽의 8연승을 이어가며 1위 SK와 7리 차이로 2위를 차지하고 있는 기아는 금요일부터 펼쳐지는 LG와의 3연전을 통해 1위 달성이 예상되고 있습니다. 현재 보여주고 있는 기아의 모습은 근성이 살아있던 해태 시절의 호랑이들을 보는 듯합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지지 않는 굳은 의지를 보이는 호랑이들로 돌아온 그들의 상승세는 여전히 지속될 가능성은 높아 보입니다.

작년 6월 10일에도 기아 선수들은 6월 10일 오른팔에 검은색 근조 리본을 달고 경기를 했습니다. 1999년 6월 10일 강한 투병 생활에도 안타깝게 세상을 떠난 김상진 선수를 여전히 기억하고 있는 그들에게 6월 10일은 그 어느 경기보다 중요할 수밖에는 없습니다.

22살이라는 너무 어린 나이에 다시 마운드에 올라서지 못하고 하늘나라로 떠나야만 했던 그는 짧지만 너무 강렬한 인상을 남겨주었습니다. 진흥고 출신의 김상진은 고교시절 초 고교급 투수로 각광받던 선수였습니다. 연세대 진학이 예정된 상황에서 70이 된 고령의 아버지와 생계를 위해 아픈 몸으로도 공장에 다녀야만 했던 어머니를 위해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1995년 11월 해태 타이거즈와 계약금 1억 원, 연봉 2,000 만원에 계약을 맺었습니다.

1996년 4월 14일 쌍방울과의 경기에서 7회 구원 등판해 3이닝 5실점 한 것이 김상진의 첫 프로 기록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그 해 신인으로 9승 5패 방어율 4.29로 '초 고교급 투수' 유망주라는 말처럼 최고의 활약을 보여주었습니다.

김상진이라는 이름을 야구 사에 크게 각인 시킨 것은 1997년 10월 25일 LG와의 한국 시리즈 5차전에 선발 출전한 그는 3승 1패로 앞선 해태에게 우승을 안겨줄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습니다. 만 20살이었던 그는 1회 서용빈에게 1실점을 한 이후 완벽 투구로 LG 타선을 막으며 해태 우승을 이끌고 최연소 한국 시리즈 완투승 투수로 기록되었습니다.

그의 짧지만 화려했던 기록은 그렇게 가장 중요한 순간 화려하게 빛을 발했습니다. 다음 해인 1998년 시즌 내내 목 통증을 호소하던 김상진은 친구들과의 식사중 피를 토하고 쓰러져 병원에 옮겨진 후 척추 종양이 발견되었지만 위암에서 시작한 암은 척추까지 전이된 상황이었습니다.

최악의 상황에서도 암을 이겨내고 다시 마운드에 오르고 싶은 열망이 높았던 김상진은 1999년 6월 10일 끝내 마운드로 돌아오지 못하고 숨지고 말았습니다. 어려운 환경에서도 탁월한 실력으로 주목받았던 그는 가장 중요한 경기에서 화려한 기록을 남기며 자신의 진가를 모든 야구팬들에게 각인시켰습니다. 어쩌면 삶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김상진 본인은 인지하지 못했지만 몸은 알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란 생각이 들 정도로 말입니다.

그렇게 2009년 기아라는 이름으로 첫 한국 시리즈 우승을 차지한 호랑이들은 10년 전 숨진 동료 김상진을 위해 우승 트로피를 그의 영전에 바쳤습니다. 가장 화려하게 빛나던 순간 자신이 사랑했던 마운드로 돌아가지 못하고 숨을 거둬야 했던 김상진 선수. 여전히 기아 타이거즈 선수들은 12년 전 세상을 등진 그를 위해 오늘 경기장에 검은 리본을 매고 경기에 임합니다. 그리고 그들은 다시 한 번 그의 영전에 한국 시리즈 우승 트로피를 바치고 싶어할 것입니다.

당시 함께 그라운드에서 해태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이종범과 그의 까마득한 후배들이 함께 기아를 최고의 팀으로 만들어가고 있는 이 순간. 김상진은 하늘에서도 기아 선수들을 바라보며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을 듯합니다. 22살이라는 짧은 생애를 살다 갔지만 그 누구보다 화려한 야구 인생을 보냈던 김상진을 그리며 다시 비상하는 기아의 모습을 보고 싶습니다.

여러 불미스러운 일들이 쏟아지듯 나온 2011년 한국 프로야구가 야구만을 위해 야구를 사랑했던 선배 선수들의 열정을 다시 돌아보고 기리는 자리를 가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여전히 많은 팬들은 김상진을 기억하고 있고 그를 추모하고 있습니다. 그의 열정이 700만을 바라보는 한국 프로야구를 만들었다는 것도 말입니다. 오늘 하루만은 김상진 선수를 기억해주는 날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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