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월드클래스의 힘은 한 팀을 어떻게 바꿀 수 있는지 오늘 경기는 잘 보여줬습니다. 아시안컵 이후 돌아와 조금 아쉬움을 보이기도 했던 손흥민이지만 첼시와 경기가 뒤로 밀리며 푹 쉴 수 있는 시간이 주어졌습니다. 그런 영향인지 크리스탈 펠리스와 경기에서 손흥민의 움직임은 최상이었습니다.
중요한 순간 경기를 지배하지 못하며 5위까지 내려앉은 토트넘은 손흥민이 정상적인 몸이 되자 다시 승리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손흥민 아시안컵 출전동안 원톱으로 나섰던 히샬리송이 부상으로 나오지 못하자, 다시 원톱 자리는 손흥민이었습니다.
4-2-3-1 전술로 나온 토트넘의 라인업에서 변화는 포로 대신 에메르송이 선발로 나섰다는 겁니다. 중앙 라인은 벤탄쿠르와 비수마가 자리했고, 공격 라인은 원톱 손흥민을 두고 아래 메디슨을 중심으로 양 측면에 베르너와 클루셉스키를 둔 전술이었습니다.
크리스탈 팰리스로서는 전술은 단순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수비를 두텁게 하고 역습으로 상대를 압박하는 방식을 사용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이런 전술을 사용하는 팀을 이기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그 어떤 강팀도 수비 위주의 팀의 방어를 뚫는 것은 어렵기 때문입니다.
더욱 토트넘 엔제볼 전술을 이제 다른 팀들이 다 파악하고 있다는 사실도 악재입니다. 강력한 공격 축구를 구사하는 엔제볼의 핵심은 중앙입니다. 그 중앙에서 모든 패스 루트가 만들어진다는 점에서 이를 막지 못하면 토트넘에 휘둘릴 수밖에 없습니다.
메디슨, 벤탄쿠르, 비수마가 중앙에 밀집하고 양 윙백들이 중앙으로 합류하며 강하게 상대를 압박합니다. 두터운 중앙을 이용해 상대 공격도 방어하고, 빠르게 역습에 나설 수 있는 기회를 잡기 때문에 그동안 엔제볼에 당한 팀들이 많았습니다.
크리스탈도 이런 엔제볼의 특성을 파악하고 중앙에 선수들을 밀집시켰습니다. 다섯 명의 토트넘 중앙을 다섯 명이 일대일 마크하듯 압박하며 힘들게 했습니다. 수비수가 비수마나 벤탄쿠르에 패스를 연결하면 중앙에서 공격 라인에게 패스를 해줘 골을 넣어야 하는데, 시작점을 방어하며 힘든 상황들이 이어졌습니다.
이런 답답한 상황을 타파한 것은 역시 손흥민이었습니다. 원톱으로 나섰지만 손흥민은 경기가 잘 풀리지 않자 하프라인 밑까지 내려와 벤탄쿠르의 패스를 받았습니다. 벤탄쿠르가 있을 자리에서 손흥민은 패스를 받자마자 상대 선수 두 명이 압박하는 상황에서 논스톱으로 베르너에게 완벽한 스루패스를 연결했습니다.
이 장면을 반복해 봐도 손흥민의 퀄리티가 얼마나 높은지 새삼 깨닫게 됩니다. 상대 선수들이 압박하는 상황에서 틈조차 보이지 않음에도 손흥민은 패스를 받는 것만이 아니라, 순간적으로 치고 들어가는 베르너에게 완벽하게 패스를 내줬습니다. 손흥민과 베르너 사이에는 또 다른 크리스탈 선수들이 있었음에도 완벽한 패스를 넣어줬습니다.
베르너로서는 완벽한 기회가 찾아왔습니다. 상대 골키퍼만 있는 상황에서 베르너는 바로 슛을 쏘지 못했습니다. 크리스탈 골키퍼 존스턴을 젖히려는 듯 공을 오른쪽으로 몰아갔지만 온몸을 사용할 수 있는 골키퍼가 이 상황에서는 유리할 수밖에 없습니다.
완벽한 기회를 허무하게 놓친 상황은 답답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베르너는 자신감이 부족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볼을 더 길고 끌고 가기보다는 골키퍼와 골대 사이의 틈을 보고 바로 슛을 하는 것이 최전방 공격수들의 역할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베르너는 그 결정력을 높이지 못했습니다.
만약 손흥민이 넣어준 완벽한 패스를 베르너가 넣었다면 오늘 경기는 보다 손쉽게 승리할 수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이 결정적 골이 무산되며 경기는 힘들게 흘러갈 수밖에 없었죠. 앞서 언급했듯 중앙에 많은 선수를 모아 상대를 압박하는 엔제볼에 대항한 크리스탈로 인해 중원 싸움은 치열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전반 득점없이 경기를 마친 후, 후반 9분 손흥민의 환상적인 슛이 나왔습니다. 클루셉스키가 중앙에 있던 손흥민에게 패스를 보냈고, 손흥민 앞에는 수비수가 있었습니다. 이 상태에서 공을 받아 한번 접는 동작이 나온다면 추가 수비수가 달려오며 기회는 무산됩니다.
베르너가 자신에게 주어진 기회를 날린 것을 생각해 보면 손흥민의 움직임은 왜 그가 월드클래스로 현지에서 불리는지 알게 합니다. 패스를 받자마자 손흥민은 바로 논스톱 슛을 날렸습니다. 이 슛은 아쉽게도 골대를 맞고 나와 골이 되지는 못했지만, 이 과정에서 보여준 손흥민의 빠르지만 날카롭고 정확한 슛이 얼마나 놀라운지 알 수 있게 합니다.
이후 기회를 잡은 크리스탈 팰리스는 프리킥 상황에서 에즈가 환상적인 프리킥 골로 앞서나갔습니다. 에즈는 부상에서 돌아와 자신이 만든 프리킥 상황을 직접 넣으며 기세를 올렸습니다. 실점하자 엔제 감독은 선수 교체를 시도했습니다.
벤탄쿠르를 빼고 존슨을 넣으며 공격수를 늘렸습니다. 4명의 공격 자원만이 아니라 공격수 존슨을 미드필더 자원과 교체하며 공격에 더욱 큰 무게 중심을 뒀습니다. 이 상황에서 수비 최전방을 책임진 인물은 바로 벤더벤이었습니다.
로메로가 올라가는 상황에서도 최전방 수비를 책임진 벤더벤은 홀로 상대 공격수를 상대했음에도 뚫리지 않았습니다. 이런 단단함이 있었기 때문에 공격에 보다 많은 숫자를 둘 수 있었습니다. 존슨 교체는 효과를 봤습니다.
후반 32분 존슨이 우측면을 침투하며 기회를 만들었습니다. 크리스탈 수비수 주춤한 상황에서 볼을 빼앗고 낮고 빠른 크로스로 베르너의 토트넘 첫 골을 만들어줬습니다. 이 과정에서 존슨의 역할이 중요했지만, 중앙에 있던 손흥민의 역할도 좋았습니다.
손흥민 곁에는 최소 1, 2명의 수비수들이 따라붙을 수밖에 없습니다. 존슨이 치고 들어오는 상황에서 패스 시점 손흥민이 뒤로 빠지며 수비수들을 끌고 나왔습니다. 옆에는 베르너가 치고 들어가고 있었고, 그 빈틈으로 존슨의 패스가 연결되며 손쉽게 골을 넣을 수 있었습니다.
동점을 만들자 토트넘의 공격은 더욱 강력해졌습니다. 3분 후인 후반 35분 역절골 주인공은 로메로였습니다. 공격 기회가 무산되며 공격 가담한 로메로가 미처 들어가기도 전에 에메르송이 빠른 스로인으로 메디슨에게 연결했습니다.
로메로가 최전방에 아직 있음을 확인한 메디슨은 감각적으로 볼을 띄워 연결했고, 이를 로메로가 헤더로 골문을 갈랐습니다. 손흥민의 유일한 약점이 헤더라는 점을 생각해 보면 로메로가 있는 상황에서 이를 완벽하게 연결한 메디슨의 패스는 대단했습니다.
후반 37분에는 엔제 감독이 사르와 호이비에르를 투입하며 중원을 더욱 강화시켰습니다. 2-1로 앞선 상황에서 중원에 힘을 부여하는 것은 당연한 조처였습니다. 이런 중원 싸움을 결국 쇄기골로 이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왼쪽 중앙 부근에서 양 팀이 공을 두고 어수선하게 싸우는 상황에서 크리스탈 팰리스 측으로 공이 연결되었습니다. 이 순간 손흥민 움직임은 역시 대단했습니다. 경기 시간이 얼마남지 않은 상황에서 그저 골 욕심만 내다보면 오프 사이드 트랩에 걸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를 능숙하게 템포를 조절하며 상대 수비를 제치며 치고 올라가는 손흥민의 움직임은 최고였습니다. 크리스탈 수비수 리차즈가 손흥민을 추격하지만, 공을 잡고 뛰는 손을 따라잡을 수가 없었습니다. 이 상황은 전반 베르너에게 주어진 일대일 기회와 유사했습니다.
골키퍼 존스톤과 마주 선 손흥민에게는 여유가 가득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빠른 속도로 공을 몰고 가고 빠르게 골을 넣는 상황 속에서도 여유가 보였다는 겁니다. 베르너가 조급함을 보인 것과 달리, 손흥민은 완벽하게 상대를 제압하고 골키퍼의 미세한 움직임까지 파악하고 여유롭게 패스하듯 골을 넣었습니다.
이 마지막 순간이 곧 최고 선수와 그렇지 않은 선수의 차이를 만들어냅니다. 베르너가 왜 아쉬운 선수인지는 손흥민의 움직임이 분명하게 알려줬습니다. 경기 중 손흥민은 베르너에게 다그치며 독일어로 분발할 수 있도록 독려했습니다. 어쩌면 그런 주장의 외침이 토트넘 이적 첫 골로 돌아왔을지도 모릅니다.
경기는 토트넘의 3-1 승리였습니다. 앞선 경기에서 패배하며 5위로 물러난 토트넘으로서는 크리스탈 팰리스와 오늘 경기가 너무 중요했습니다. 무조건 승점 3점을 만들어야 하는 상황은 선수들에게 부담을 줄 수도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 선취골까지 내준 팀은 자칫 무너질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토트넘은 오히려 더욱 강력하게 반격하며 짧은 시간에 3골을 몰아넣으며 상대를 무너트렸습니다. 올시즌 달라진 토트넘의 힘은 후반 0-1로 뒤진 이후부터 증명되었습니다.
손흥민은 PL 사무국에서 선정하는 팬 투표 MOM(최우수선수)을 받았습니다. 스카이 스포츠 MOM도 함께 수상하며 오늘 경기 주인공은 손흥민이었음을 다시 확인받았습니다. 수비수 벤더벤은 비록 도드라져 보이지는 않았지만, 단단하고 착실한 수비로 토트넘을 지켰습니다.
손흥민의 오늘 골은 리그 13골입니다. 아시안컵에 출전만 하지 않았다면 이 기록은 더욱 큰 폭으로 상승했을 겁니다. 원톱 상황에서 골 기회가 더 자주 올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히샬리송이 빠진 2~3주는 손흥민이 원톱으로 나설 수밖에 없습니다. 이는 골을 넣을 가능성이 한층 높아진다는 의미입니다.
아시아 선수가 유럽에서 넣은 최다골은 기존에는 샤츠키흐가 넣은 206골이었습니다. 물론 손흥민이 오늘 경기 전까지 동률을 기록하고 있었죠. 샤츠키흐 선수가 동유럽 리그에서 몰아넣었다는 점에서 순도와 가치를 생각해 보면 유럽 최고 리그에서만 뛴 손흥민과 비교조차 될 수는 없습니다.
손흥민은 그런 샤츠키흐의 기록마저 깨고 아시안 유럽리그 최다골 선수가 되었습니다. PL 역대 최다골 기록에서도 20위권을 가시권으로 두게 되었습니다. 겨우 다섯 골 차이라면 올 시즌이 끝나기 전 손흥민의 역대 최다골 기록은 17위 권까지 올라갈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골은 자신이 직접 넣을 수 있지만, 어시스트는 아쉽습니다. 오늘 경기에서 베르너의 완벽한 기회를 만들어준 장면만이 아니라, 존슨에게도 기회를 줬지만 놓쳤습니다. 베르너의 패스를 받은 손흥민은 몸을 틀어 중앙에 있던 존슨에게 감각적인 논스톱 패스를 내줬습니다.
그저 발만 대면 골이 되는 완벽한 기회였지만, 자신에게 공이 올지 몰랐던 존슨은 이 완벽한 패스를 골대를 넘기는 것으로 마무리했습니다. 이 두 번의 완벽한 패스가 골로 연결되었다면 오늘 손흥민은 최소 1골 2 도움을 기록할 수 있었습니다. 올 시즌 완벽한 패스를 많이 전달하지만 도움으로 기록되지 못하는 손흥민은 아쉬울 수밖에 없습니다.
토트넘의 다음 경기는 애스턴 빌라와 원정 경기입니다. 현재 4위로 토트넘보다 승점 5가 앞서 있는 빌라와 경기는 무조건 이겨야만 합니다. 이 경기를 이기지 못하면 자력으로 4위를 차지하는 것은 어렵습니다. 그런 점에서 토트넘에게 다음 경기는 중요합니다. 한 경기 덜 치른 토트넘이 빌라를 잡게 된다면 자력으로 최소 4위 자리를 지킬 가능성은 커집니다. 과연 손흥민이 빌라를 무너트릴지 기대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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