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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칼럼

박재홍의 은퇴를 더욱 값지게 만든 후배 손민한 살리기 감동이었다

by 스포토리 2013. 1.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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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타준족의 상징인 리틀 쿠바 박재홍이 선수 은퇴를 선언했습니다. 30-30 클럽을 달성한 최초의 선수였던 그의 은퇴는 아쉬움도 함께였습니다. 자신의 모든 것을 담았던 SK와의 제계약이 실패한 후 무적인 상황에서 진행된 은퇴라는 점은 안타까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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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출신인 박재홍은 1992년 해태 타이거즈에 1차 지명을 받았지만 프로 입단을 포기하고 연세대에 진학했습니다. 그의 해태 타이거즈에 대한 거북함은 대단했습니다. 대학 졸업 후에도 해태가 아닌 현대를 선택했고, 밀약을 통해 지명권과 투수 최상덕을 내주는 조건으로 현대 유니콘스의 유니폼을 입은 박재홍은 그렇게 최고의 스타로 자리를 잡아갔습니다.

 

박재홍은 프로 입단과 함께 자신이 왜 위대한 존재인지를 실력을 모두 보여주었습니다. 데뷔 첫 해인 1996년 126경기에 출전해 142안타, 30홈런, 108타점, 36도루, 0.295타율을 기록하며 신인이라고 생각할 수 없는 대단한 가치를 만들어냈습니다. 프로 데뷔한 첫 해 프로야구 첫 30-30 클럽을 달성하고, 홈런왕과 타점왕, 그리고 신인왕까지 거뭐진 그는 진정한 원조 괴물이었습니다.

 

 

1996년과 1998년, 2000년 세 번의 30-30 클럽 달성과 1997년 27홈런, 22도루로 20-20 클럽까지 달성한 박재홍은 진정 최강자였습니다. 거대한 체구는 아니지만 리틀쿠바라는 별명이 말해주듯 엄청난 파워를 가진 박재홍은 프로를 지배하는 진정한 최강자였습니다.

 

현재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박재홍이 2003년 3루수 정성훈과 현금을 포함한 트레이드로 기아로 트레이드 되었습니다. 첫 해는 자신의 가치를 보였지만, 부상으로 정상적인 활약을 하지 못한 박재홍은 다시 SK의 김희걸과 1:1 트레이드로 고향 팀을 벗어났습니다.

 

SK에서 8시즌을 마친 박재홍은 현대 시절의 화려함을 보여주지는 못했지만, 안정적인 타선으로 SK에 큰 힘을 부여해주었습니다. 2009 시즌에는 프로야구 최초로 250-250을 달성한 박재홍은 프로야구 역사를 새롭게 작성한 원조 호타준족이었습니다.

 

2005년 200-200 클럽 달성 후 4년 만에 대기록을 달성한 박재홍은 2012년 프로야구 7번째로 300홈런을 달성하며 화려한 야구 인생을 마무리했습니다. 267개의 도루로 300-300 달성에는 실패했지만, 그가 보여준 대단한 기록은 쉽게 무너지지 않은 대기록이었습니다. 이런 그의 대단함을 더욱 단단하게 만든 것은 선수협회장으로 위기의 선수협을 잘 이끌어냈다는 점일 겁니다. 그보다 더욱 그를 대단하게 만든 것은 은퇴식에서 보인 그의 대인배 풍모였습니다.

 

2년 후배인 손민한은 애증의 관계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전 선수협회장이었던 손민한은 회장으로 있던 시절 수많은 잡음을 만들었던 존재라는 점에서 최악으로 불리기도 했기 때문입니다. 1997년 롯데 자이언츠에 1차 지명을 받아 입단한 손민한은 대단한 투수였습니다. 2000년 12승과 2001년 15승 6패로 다승왕과 승률왕까지 차지한 그는 2005년 18승 7패로 시즌 MVP를 차지하며 최고의 시즌을 보냈습니다.

 

 

2005년 2008년까지 4시즌 연속 두 자리 승수를 기록하며 안정적인 투구를 보였던 손민한은 부상 여파와 선수협으로 인해 더 이상 투수 손민한으로서 가치를 찾기는 힘들었습니다. 선수 초상권 논란으로 불명예스럽게 물러나야 했던 손민한에게는 더 이상 야구 선수로서 입지를 다지기 힘들어 보였습니다.

 

최근까지 부상여파로 더 이상 선수 생활이 어려울 것으로 보였던 손민한은 NC 다이노스에서 새로운 선수로 마지막 투혼을 보이고 싶어 했습니다. 하지만 선수협 파동을 통해 실추된 이미지는 그의 선수 생활에 발목을 잡게 만들었습니다. 선수들의 반발이 거세지며 그의 NC 입단은 쉽지 않았으니 말입니다.

 

박재홍은 자신의 은퇴식에 손민한을 초대했습니다. 선수협 파행으로 불명예스럽게 물러나고 그 자리를 대신했던 박재홍이 문제가 많았던 손민한을 가장 중요한 자리에 초대한 것은 의외였습니다. 새롭게 선수협을 이끌며 강력하게 손민한을 비판했던 박재홍이라는 점에서 더욱 의외였으니 말입니다. 하지만 박재홍은 대인배였습니다.

 

손민한이 한 행동은 여전히 잘못되었다고 밝힌 박재홍은 하지만 그 친구가 살 수 있는 길을 열어주고 싶었다며, 그를 소개하는 모습은 대단함으로 다가왔습니다. 박재홍에 의해 중요한 은퇴식에 등장한 손민한은 공개적으로 자신의 행동에 대해 사죄를 할 수 있다는 사실은 중요했습니다.

 

선수들과 팬들의 반발로 NC 다이노스의 복귀 조차할 수 없다는 점에서 박재홍의 은퇴식에 초대를 받았다는 사실은 중요했으니 말입니다. 용서를 강요하지 않고 그 몫은 모두 선수들과 팬들의 몫이지만 후배 손민한이 선수로서 마지막 기회를 얻을 수 있도록 선처 해주기를 바라는 선배 박재홍의 모습은 뭉클한 감동으로 다가왔습니다.

 

광주에서 태어나 야구를 배우고 꽃을 피웠던 리클 쿠바 박재홍은 프로로서 인천야구를 대변하는 최고의 스타로 성장했습니다. 호타준족의 상징인 박재홍이 비록 선수로서 마지막을 고했지만, 야구팬들과 함께 영원히 야구와 함께 할 것이라 믿습니다. 자신에게 가장 소중하고 중요한 은퇴식에 미울 수밖에 없었던 후배를 과감하게 품으며, 그에게 선수로서 생명을 이어갈 수 있도록 도와달라는 이 멋진 선배의 은퇴식은 결코 외롭고 초라하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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